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딩 May 10. 2024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로 인해 괴롭다

나를 괴롭히는 건 네가 아닌 나의 마음...

나는 똘이가 사랑스럽다.

똘이는 발달상태와 관련 없이 존재자체로 너무 소중하고 귀한 아이다.



엄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도 감개무량하다.

나는 그 애를 때때로 미워했는데, 내가 아이를 미워한 그 순간조차도 아이는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 너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너로 인해 괴로운 걸까.



똘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거라면

똘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에는 나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할 텐데

똘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도 나는 여전히 똘이로 인해 괴로워한다.

​​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진 않을까. 오늘도 밥도 안 먹고 쉬도 참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진 않을까.

선생님이 똘이에게 너무 지쳐버리시면 어쩌나. 친구들이 똘이에게 다 등을 돌려버리면 어쩌나.







이건 결국 나의 문제다.

똘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똘이에 대한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



어린이집에서 자주 고집을 부리고 활동거부를 하는 똘이가 내년에 학교에 가서 괜찮을까?

집 앞 초등학교는 내년에도 특수반 티오가 없는데... 특수학급에 입급하려면 이사라도 가야 하나?

이사를 간다고 해서 특수학급에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이사까지 해놓고 특수학급에 배정받지 못하면 또 어쩌나?



똘이는 일반학급에서는 분명 방치되거나 소외되고 말 텐데, 점점 뒤처지고 자신감을 잃어가면 어쩌지?



똘이를 가르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야 될까?

이 지출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자립.... 자립시킬 수 있을까...



언젠가 부모가 없어도 형제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살아갈 만큼은 키워놓아야 하는데...

부모 없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도 마련해놓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까...

​​





생각, 생각 끝없는 생각들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멈춰지지 않는 생각들.



차라리 어떻게 하면 너를 더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긍정적인 방향의 생각이라면 좋으련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답 없는 고민을 반복하는 내가 답답하다.



...



너는 너의 속도대로 열심히 성장 중인데 나의 욕심은 늘 너의 속도를 앞서간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탈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가족과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기 밥벌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길 원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에게 책임이 있다.



나는 네가 걱정스럽다.

나는 한편으론 네가 부담스럽다.



때때로 너로 인해 나를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향한 너의 무조건 적인 사랑 앞에 때로는 죄책감이 느껴졌다.





나를 웃게 하는 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너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하여 우리 부부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는 너

우리 부부가 더욱 단단하게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너

주변에 우리를 걱정하고 도와주는 감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해 준 너

세상이 아직까지 따뜻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준 너



뒤쳐진다는 조급함을, 낙오된다는 절망감을, 소외된다는  서러움을, 거절당하는 순간의 모멸감과 외면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알게 해 준 너



네가 아니었으면 결코 몰랐을, 몰라도 되었을 감정들을 속속들이 알게 해 준 너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걸 절감하게 해 준 너​

..​

한때 너로 인해 내 삶을 잃어간다고 느꼈지만 사실은 나의 세계를 더 넓혀준 너



내 삶은 너로 인해 더 힘들어졌지만, 너로 인해 더 넓어질 수 있었다.



너는 그렇게 내게 세상에 둘도 없는 축복된 존재다.

너의 존재는 선물이다.

나는 이제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네가 아니라 너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생각이다.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생각 때문에 괴로워지지 않도록,

괴로워하느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의 유년시절, 이 아름다운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조금 더 의식적으로 노력하자.

작가의 이전글 메디키넷(ADHD치료제) 단약 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