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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May 21. 2024

자폐스펙트럼 아이의 운동회 1

자폐스펙트럼, adhd를 가진 아이의 릴레이 연습

“여보 다음 주 토요일, 똘이 어린이집 운동회인데 어떻게 할까?”


“가야지, 뭘 물어봐?”


“작년 기억 안 나? 

똘이는 시끄럽고 낯설다고 나한테만 아기 코알라처럼 붙어있고. 운동회 끝날 때까지 상황 파악도 전혀 못했잖아. 상황 인지도 안 되는데 뛰라고 하니 어디로 뛰는지도 모르고 따라 뛰고... 애는 더 예민해지기만 하고. 다른 학부모들 다 구경하는데서 나는 행여나 똘이 문제행동 발생할까 봐 똘이만 졸졸 따라다녀야 하고... 또 혹시나 사람 많은 데서 똘이가 다른 친구한테 피해라도 끼치면.....”


“어린이집에서는 뭐래?”


“아직 얘기 안 해봤어.”


“담임선생님이랑 의논해 봐. 난 그래도 똘이가 작년보다 많이 컸으니 똘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자기 하자는 대로 할게.”



사실 나는 똘이 운동회에 참석하는 게 망설여졌다.

똘이가 문제 행동을 할 까봐가 아니라 그런 똘이의 모습을 보고 내가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다.


 어린이집 운동장도 아니고 대형 체육관을 대관해서 다른 어린이집과 대항전으로 진행되는 운동회다.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을지. 응원석에 앉아서 즐겁게 경기를 관람하는 다른 학부모 들과 달리 나는 똘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똘이의 심기경호를 해야 할 게 뻔했다.


 똘이는 낯선 장소, 마이크 소리, 사람 많고 어수선한 상황에 특히 취약하다. 특히 청각적으로 여러 소리가 한꺼번에 들어오면 불안이 확 오르는데, 그건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불안이 오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주변으로 다가오는 모두에게 고슴도치 모드가 된다. 그럴 때의 똘이는 친구들이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려고만 해도 자기에게 부딪혀오는 걸로 느끼는 것 같았다. “안 돼! 오지 마!”하고 지레 소리를 질러 버리거나 자기가 먼저 친구들을 밀어버리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럴 땐 주로 내가 똘이를 따라다니며 안심시켜 주고 문제행동은 저지한다. 


작년보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운동회에서도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나는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노심초사할 것이 뻔했다.


 

‘저 엄마는 7살이나 된 애 뒤를 왜 저렇게 졸졸 따라다니는 거야? 예비 헬리콥터맘인가?’ 


‘쟤는 다 큰 애가 왜 저렇게 천지 분간을 못 해? 무슨 문제라도 있나?’


‘단체경기 하는데 엄마 한 명이 저렇게 자기 애만 챙기면 다른 애들도 다 엄마를 보고 싶어 할 텐데 왜 저래.’



다른 사람들의 생각풍선이 벌써부터 보이는 것 같았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나는 똘이가 부끄럽지 않다. 그 애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하지만 그 마음과 별개로 이런 단체행사에 한번 참여하고 나면, 설사 똘이가 별문제 없이 활동을 마쳤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끊임없이 일반 아이들과 똘이를 비교하는 지옥의 루프에 빠지고 만다. 똘이가 무사히 활동을 마쳤음에 감사하기보다, 똘이가 그 안에서 배움을 얻었음에 기뻐하기보다 똘이가 여전히 또래와는 다른 아이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 선생님의 지시 만으로 척척 움직이는 아이들, 낯선 장소와 시끄러운 소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 친구가 말을 걸면 대답하고 음악이 나오면 놀라지 않고 리듬을 타는, 경기가 끝나면 사회자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팀이 이겼는지 파악할 줄 아는, 청팀이 이겼어요! 하면 와~ 하고 다 같이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이 "ㅇㅇ반 모이세요!" 하면 그 아래로 쪼르르 달려가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과 우리 똘이를 나도 모르게 번갈아 쳐다보게 된다. 


그러다가 나는 자꾸만 서글퍼지고 구겨지다가 끝내는 쪼그라 붙어 버리는 거다. 


집에 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 것이고, 똘이는 우는 나에겐 관심 없이 자기 할 말만 할 것이고 첫째는 자꾸 엄마 왜 우냐고 물을 것이고 남편은 새삼스레 뭘 그러냐고 괜찮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을 것이다.


운동회에 가야 할까? 

가는 것이 똘이에게도 좋은 일일까? 

나 상처 안 받자고 아이에게 주어진 기회를 뺏는 것일까? 

어차피 똘이가 참석한다 해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불안해하기만 할 테니 아예 안 가는 것이 똘이에게도 나은 일일까?





“선생님... 똘이, 운동회에 참석하는 게 맞을까요?”


“네? 똘이 지금 릴레이 연습도 하고 있는데요?”


“똘이가 릴레이를요? 설마 선수로 뽑힌 건 아닐 테고... 반 아이들이 다 같이 하는 건가요?”


“모두 하는 건 아니고 6~7세 13명 중 8명 정도 참여하니... 대부분 하는 거긴 하지만... 어쨌거나 똘이도 뽑힌 거예요. 똘이가 달리기 실력으로는 13명 중 8명 안에 들어요. 문제는, 실컷 잘 달려와서 친구에게 바통을 넘겨주지 않고 던져버려요. 운동회 전에 이 부분만 해결되면 릴레이 선수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정에서 한번 연습시켜 주실래요?”


“선생님, 저희 똘이가 정말 릴레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운동회 당일은 어린이집도 아니고 외부 체육관일 텐데요...”


“체육선생님도 바통터치만 되면 가능하겠다 하셨어요. 어머니, 똘이에게 릴레이 경험을 꼭 시켜주고 싶어요. 같이 연습시켜 봐요!”


정신이 화들짝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마우신 분....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한 분.


 똘이를 행사에 참여시키는 것 자체가 부담을 지는 일 일 텐데, 선생님은 똘이가 참석을 안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씀하셨다.


 똘이를 릴레이 선수로 뽑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이 없을 텐데...(나초자 못 믿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똘이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면 본인의 수고를 감수하고 뭐든 해주시려는 선생님께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그래. 선생님도 이렇게 까지 해주시는 데 엄마인 내가 못 할게 뭐야. 

우리 똘이가 릴레이 선수가 될 수도 있다는데. 

설사 작년 운동회처럼 똘이가 상황파악도 못 하고 얻어오는 것도 없다 해도,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한다 해도... 낯선 환경에 노출되는 것에 익숙해지게 해야지 피해가게 하는 건 옳지 않아. 혹시라도 성공하면 똘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똘이는 작은 성공에 정말 목마른 아이니까.’ 



오늘부터 특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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