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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6. 2023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가르치는 법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배운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의 경우는 타인의 행동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라 기대되는 것도 일일이 가르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aba 선생님은 늘, 똘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는,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무엇을 가르치든 단계를 아주 잘게 쪼개서 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갔으나, 가정에서 실천을 하려 할 때 ‘단계를 쪼갠다’는 의미가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그룹 체육 선생님이 첫째(발달지연 없음)에게 줄넘기를 가르치시는 모습을 보며, 단계를 쪼갠다는 게 어떤 건지를 깨달았다.



성인인 나는 너무나 쉽게 되는 1단 뛰기. ‘줄 잡고 돌려서 뛰면 되는데 그게 왜 어렵지?’ 싶지만, 줄넘기를 처음 하는 아이에게는 당연한 게 당연하지가 않은 것이다.




체육 선생님이 첫째에게 줄넘기를 가르치신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접영을 하듯 양팔을 뒤에서 앞으로 휘젓는 연습을 한다.

2. 줄넘기를 양손에 쥐어준 뒤 손을 움직일 때 줄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3. 줄을 발목 뒤에 걸고 손을 앞으로 당겨서 줄을 팽팽하게 만들어 본다.

4. 줄을 위로 넘겨서 앞으로 보냈다 다시 뒤로 보냈다를 반복한다.

5. 손에 줄넘기를 든 채로 줄을 발 앞에 떨어뜨려 놓고 발로 점프하여 넘는다.

6. 발로 줄을 뛰어넘으면 발 뒤로 보내진 줄을 다시 팔을 돌려 발 앞으로 넘긴다.

7. 다시 점프하여 줄을 넘는다.



선생님은 각 단계마다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고 아이의 수행에 피드백을 주셨다. 각 단계를 30번 이상 연습 시킨 후 아이에게 이 과제가 충분히 몸에 익었을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가셨다. 그리고 아이가 비로소 3~5번의 동작을 이어서 수행하여 줄 한 번을 넘었을 때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그 후엔 5~7번의 동작을 반복 연습 시키셨다. 동작을 이어서 한다고 해서 성인이 하듯 줄넘기를 연속으로 휙휙 넘는 것이 아니고, ‘뛰고 넘고 돌리고’를 뚝 뚝 끊어서 하는 것이다. 아주 열심히, 땀 뻘뻘 흘리면서 하는 첫째를 보며, aba선생님이 말씀하신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 단계를 잘게 쪼개서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줄 잡고 앞으로 돌려서 넘으면 돼. 자 봤지? 이제 해봐.”라고 하면 줄넘기를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아이는 너무 막연하고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단계를 쪼개서 연습한 후 숙달이 되고 나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수행이 된다.



똘이에겐 세상 모든 일이 그럴 것이다. “잘 봤지? 이제 해봐.”라고 하는 것은 똘이에겐 그림을 처음 그리는 아이에게 완성된 수채화 작품을 보여주고는 “자 그려봐.”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미술을 처음 접하는 아이에게 연필 쥐는 법부터 가르치듯,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가르치듯. 똘이에게는 눈을 맞추고 말하는 방법도, 대화를 주고받는 방법도,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놀이하는 방법도, 화해하는 방법도 ‘모든 상황을 일일이’, ‘하나하나 단계를 쪼개어’ 가르쳐야 한다.




자폐스펙트럼 아이에겐 세상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다. 첫째에게 ‘줄넘기’가 처음이듯,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다가 1년 전 갓 인간세상으로 나온 똘이에겐 세상 모든 일이 다 처음인 것이다.



그래서 난 요즘 똘이가 모글리처럼 정글에서 살다가 인간 세계에 갓 돌아온 아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아이를 가르치려 노력한다. 끝까지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려고 하지 않고 인간 세계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특한 우리 작은 아이.



소중하고 귀여운 나의 모글리.

오늘의 깨달음을 잊지 않고, 똘이를 가르치는 게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면, 늘 첫째가 줄넘기를 처음 배우던 모습을 되새김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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