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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 Jun 18. 2024

장애아동 입학 전 예비학교 프로그램 참여기

“똘이는 참 잘하네요. 우리 애가 똘이만큼만 되어도 정말 좋겠어요.”


“맞아요. 부러워요. 똘이는 말도 잘하고 겉으로 봐선 티도 잘 안 나네요. 우리 애는 하....”



똘이가 잘한다고? 똘이가 부럽다고? 이게 뭔 소리냐. 내가 살다 살다 이런 말을 듣는 날도 있다.



‘똘이도 사실은 충동성, 산만, 불안 3종 세트도 골고루 갖추었어요.’라고 말하려다 삼켰다.


왜 삼켰지?


“아유, 아니에요. 다 똑같이 느린 아이들인걸요.”


아니라며 겸양을 떠는 내 모습에서 어쭙잖은 우월감이 묻어난다는 느낌이 들어 흠칫 놀랐다.


맙소사. 무슨 전교 1등 엄마라도 된 줄?


이런 내가 참 우습다. 정신 차려라. 이 하찮은 인간아.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잘하는 축은커녕, 보통 소리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똘이가 어떻게 똘이가 ‘잘하는 아이’가 되었느냐.

그렇다. 이곳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주관하는 예비학교 현장이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학교생활에 필요한 착석, 신변처리, 지시수행 능력 등을 예습시켜 주는 무료 프로그램이다

 장애인복지관의 재활 수업은 사설 센터의 수업보다 수강료가 반의 반 정도로 저렴하다. 그래서 늘 경쟁이 치열하다. 장애등록이 되어있는 아이들을 우선으로 받기 때문에 일반 발달지연 아동은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다.(물론 장애등록이 되어있지 않은 ‘조금 느린’ 아이의 엄마들은 굳이 장애인 복지관을 찾지도 않는다.)  



 심지어 예비학교 프로그램은 무료 그룹치료다. 특수교사와 언어치료사가 소그룹으로, 거기다 무료로 학교생활을 연습시켜 준다니 세상에 이보다 좋을 수가! 그래서 예비학교 프로그램은 매년 경쟁이 치열하다.


 예비학교 프로그램은 무조건 장애 정도가 심하다고 뽑힐 수 있는 건 아니다. 복지관은 선정기준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다만, 느린 아이 엄마들의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일반학교에 입학 예정이긴 하나 학교생활에서 문제 상황이 예측되는 장애아동, 착석이 힘들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은(?) 장애아동, 혼자서 단체 활동 참여는 어렵지만 교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찌 저찌 참여가 가능할 것도 같은(?), 문제 행동이 있기는 하나 다른 아동에게 큰 신체적 위협이 될 만한 문제행동은 없는(?) 요런 애매~한 친구들이 뽑힌다고 한다.



 저 말을 들은 나는, 우리 똘이야 말로 저 프로그램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아이라고 확신했다. 치열한 하위권 경쟁을 뚫고 우리 구내 7세 장애 아동 신청자 중 5명 안에 들어야 한다!!


 너무 잘해도 안 되고, 너무 못 해도 안 되는 요상한 심사기준이라 어떤 전략을 세워야 똘이가 뽑힐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었다. 요리조리 전략을 분석하던 나는, 모집범위가 '발달지연' 아동인데 반해 뽑힌 친구들은 대부분 장애등록이 된 아이들이었던 전적을 고려하여, 똘이의 부족한 점을 최대한 어필하기로 했다.




 참여 아동 선발 면접 때 작심을 하고 복지관에 들어선 나는, 사회복지사를 앞에 앉혀놓고 그녀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우리 아이가 얼마나 화용 언어 수준이 떨어지는지, 학교 가서 얼마나 문제행동을 많이 할지, 현재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신지, 이 아이를 치료하려다 우리 집 기둥이 어떻게 뽑혀나가고 있는지 등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똘이는 면접을 잘 본 탓인지 못 본 탓인지 헷갈리지만 어쨌거나 5명 안에 당당히 뽑혔다.

특수교사와 언어치료사가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진행하는 좋은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뻤다.



 대망의 오리엔테이션 날, 아이들과 그 보호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막상 같은 그룹으로 꾸려진 아이들을 보자 한숨이 팍 나왔다. 얼핏 봐도, 똘이보다 너무 발달 수준이나 기능이 낮아 보이는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치맘 필터를 빼고 봐도 똘이는 그중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카스점수(자폐스펙트럼 척도)가 커트라인보다 조금 높은 편이고 이제 말도 곧잘 하는 똘이는, 전형적인 자폐 양상을 보이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꽤나 ‘정상’ 같아 보였다.


똘이를 데리고 도망가고 싶어졌다. 이 아이들 틈에서 똘이가 과연 뭘 배울 수 있을까 싶었다.


 안다. 그 아이들은 죄가 없다. 그 아이들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똘이와 함께 그룹이 되지만 않았다면 한 명 한 명 각자의 강점과 매력이 있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을 거다. 각자의 부모에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아이들인지 내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똘이와 같은 그룹의 구성원으로서는 내키지가 않았다.


우리 똘이는 어느 정도(?) 착석도 되는데, 핑퐁대화는 못하지만(?) 이제 말도 곧잘 하는데. 반에서 만년꼴등이긴 하지만(?) 일반 어린이집을 다니는데.

(말이야, 방구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느린 아이의 엄마인 내가, 그 아이 한 명 한 명의 인생이 얼마나 귀한지, 그 아이의 부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뻔히 아는 내가, 그런 식으로 등급 매기듯 우리 아이와 어울릴 아이, 어울리면 안 될 아이를 나누어도 되나?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무수한 상처를 받고 울어온 내가?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런 내가 위선적이라고 느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첫째는 친정에, 셋째는 시터 이모님께 맡기고 차로 30분을 달려서 가는 수업이다. 무료프로그램이라고 해서 효율을 따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나의 시간적 효율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겐 똘이의 시간도 너무나 귀했다. 조금이라도 더, 입학 전에 조금이라도 더 아이의 능력치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한창 마음이 급하던 때였다.



 제발 똘이를 뽑아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던 모습이 무색하게, 오티가 끝나기도 전에 중도 하차 하려면 복지사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티는 정말 환장파티였다.


 우는 친구, 책상을 쾅쾅 치며 소리를 지르는 친구, 수시로 자리에서 이탈하여 장소를 탈출하려는 친구들로 진행이 불가할 지경이었다. 자발어가 가능한 아이가 거의 없어 보였다.


담당 복지사님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끝마치지도 못한 채 서둘러 오티를 마무리하셨다.



‘과연 똘이가 이곳에서 배울 것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수업 진행이 가능하긴 한 건가? 똘이를 참여시키는 게 맞을까? 문제행동만 학습해 오는 것 아닐까?’






“복지사님, 꼭 좀 뽑아달라고 사정사정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런 말씀을 드려 너무 죄송해요. 같은 그룹의 친구들이... 뭐랄까... 똘이랑 발달 수준이 많이 차이가 나는 것 같아서요. 정상발달 아이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도토리 키재기일 수 있지만 그래도 저는 저희 아이와 어느 정도 상호작용이 가능한 친구들과 그룹이 될 줄 알았어요...”


“어머님, 어머님 마음 이해합니다. 제가 봐도 똘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기능이 많이 좋은 편이긴 해요. 매년 그런 이유로 중도하차하는 친구가 생기곤 합니다. 뒤에 대기순번 아동도 있으니 잘 생각해 보시고 그만두실 거라면 최대한 빨리 말씀해 주세요.”





결정을 앞두고

어릴 적 학습만화 주인공의 생각풍선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 내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걱정 많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내가 말했다.


‘똘이에게 실보다 득이 더 많은 수업일까? 아니 득이 있긴 할까? 득과 실이 반반이어도 안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차라리 그 시간에 개별 인지나 언어수업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 또래모방이 이제 갓 시작된 아이인데... 지금도 어린이집의 업둥이인데... 느린 친구들의 문제행동만 잔뜩 배워오면 어쩌지?’



 자기 객관화와 자기혐오 사이 어딘가에 기생하는, 반골기질의 또 다른 내가 받아쳤다.


‘똘이는 뭐 문제행동이 없냐? 똘이도 문제행동을 하잖아. 어린이집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로 지금껏 지내왔다는 것 잊었어? 네가 뭐 잘났다고, 똘이는 또 얼마나 잘났다고 그 아이들과 섞이기 싫어하는 거야? 어린이집 친구들이 똘이가 느리다는 이유로, 똘이가 문제행동이 있다는 이유로 똘이랑 같은 그룹이 되기 싫어한다고 생각해 봐. 느린 아이들의 문제행동이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네가, 너 역시도 장애아동의 엄마인 네가, 너희 아이가 조금 더 낫다는 이유로 다른 장애아이들과 어울리길 꺼려하는 게 말이 되냐?’



 ‘그래서가 아니야. 그 아이들이 싫어서가 아니야. 그 아이들이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난 우리 똘이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거야. 돈과 시간, 내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이 아이의 치료에 올인하고 있다고. 이왕이면, 이왕 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조금 더 똘이의 발전에 도움이 될 만한 그룹을 찾고 싶은 거라고.’



 ‘그래서, 그럼 똘이를 특수학급에 안 보내고 일반학급에 보낼 거야? 아니잖아. 특수학급에 가도 어차피 특수아이들과 수업을 함께 한다고. 그때도 똘이가 더 기능이 나은 아이네 뭐네 하면서 뒤로 뺄 거야?

 문제행동을 보고서도 따라 하지 않는 연습도 필요한 거야. 똘이가 또래모방을 잘하는 아이일수록 해서는 되는 행동과 안 되는 행동을 분별하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그게 가능한 아이면 애초에 장애 등록을 왜 해? 해서는 될 행동, 안될 행동 분별이 안 되니까, 분별이 되어도 자기 통제가 안 되니까 장애등록을 한 거잖아. 그리고 우리 똘이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거기 친구들은 말을 거의 못 하던 걸?’



 ‘똘이가 그렇다고 말 잘하는 친구들과는 대화가 되었냐? 어차피 안 되잖아.’


 ‘그래도 난 똘이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아이와 그룹이 되면 좋겠어.’



 ‘때려치워라. 때려치워. 같은 장애부모도 자기 애에게 피해 갈까 봐 다른 장애아동을 차별하는데, 일반인이 차별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진짜. 그만 두자. 네가 위선자라는 걸 깔끔하게 인정하고 그만두라고. 그리고 나중에 어디 가서 똘이가 차별받아도 질질 짜지나 마.’



‘내가 지금 안 한다고 하면, 오티에서 만났던 아이 엄마들이 상처받거나 아니꼽게 생각하시진 않을까? “그래, 네 자식은 좀 다 이거지? 우리랑 어울리기 싫다 이거지?”라고 생각하시지 않을까?

누구도 상처 주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상처 주고 싶지 않다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하기 싫은 프로그램에 억지로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순 없잖아...’



‘고양이 쥐 생각하는 소리 하네.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마. 좋은 사람 놀이에 심취한 거잖아. 남에게 상처주기 싫은게 아니라 네 입으로 듣기 불편한 소리 해야하는 상황이 싫은거잖아.  그냥 네가 편견과 위선에 갇힌 사람인 걸 인정하기 싫은 거라고.’



‘위선이나 편견 같은 게 아냐! 그냥, 똘이를 잘 키워내고픈 나의 욕심이라고!’




두 마음이 싸우는 걸 지켜보다 그날 밤을 꼬박 새 버렸다.






창문사이로 새벽빛이 스밀 때 즈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들이 똘이를 좋은 방향으로 끌어주지 못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


똘이는 어린이집에서 늘 꼴등만 해왔잖아. 어쩌면 똘이가 그 사이에서 모델링 역할을 맡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발표도 먼저 하고 친구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말이야. 똘이는 늘 그런 경험에 목말라했잖아?

태어나서 모범생이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아이잖아. 자신이 잘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 금방 주눅 들고 포기하는 아이잖아.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시도조차 안 하는 아이잖아.



아무리 칭찬해 줘도, 진짜 자신이 잘해서 받는 칭찬과 그렇지 못한 칭찬을 귀신같이 구별하는 아이잖아. 그곳에서라면 진짜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똘이도 자신감 있게 뭔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거기다 똘이는 늘 배려받기만 하고 피해 끼치기만 했던 아이잖아. 친구를 배려하고 양보하고 때로는 친구가 끼치는 불편함을 참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문제행동을 학습해 올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기 통제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몰라.



자폐 아이들의 특성상, 낯선 장소, 낯선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크니 오티 날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날이 가장 힘든 날이었을 거야. 수업 분위기도 점점 좋아질 거야. 그 아이들에게도 분명히 배울 점, 잘하는 점이 있을 거야. 설령 거기서 배움을 얻지 못한다 해도 그 경험이 똘이에게 순작용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물길을 바꿔주면 될 거야.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사실은,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 하겠어서 억지로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 같아 찝찝하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



어쩌면,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절대로 다른 아이들을 편견의 눈으로 대하지 말자.

‘똘이가 손해 본다는 식’의 생각은 티끌 하나만큼도 남기지 말고 뜨는 해와 함께 싹 태워버리자.






그렇게 길고 긴 내적 사투 끝에, 똘이는 예비학교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다.



똘이는 다시 소리 지르는 버릇이 생겼다. 속상했다. 하지만 한번 소거된 적 있는 버릇이므로, 다시 소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노력하면 된다.


손으로 책상을 계속해서 탕! 탕! 탕! 하고 치는 친구의 옆자리에 앉을 땐, 청각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귀를 막고 자기 머리를 때리다가 결국은 그 친구의 머리를 콩 하고 때리고 말았단다. 친구가 불편한 행동을 해도 친구를 때리는 건 절대 안 된다고 계속해서 알려줘야겠다.


한 친구와는 서로 장난감을 양보하지 않으려다가 몸싸움이 나기도 했단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배웠으면 좋겠다


1번으로 손을 들고 발표도 했다고 한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앞으로 나왔단다.


우는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단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쓰다듬기만 하다가 친구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조용히 하세요!”라고 외친 뒤 머쓱하게 자리로 돌아왔단다.



똘이를 믿어 보는 거다.

어디서건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보는 거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 배를 탄 친구들이다.

다 같이 성장하는 거다.


똘이도 다른 아이들도 다 같이 성장할 수 있길.


늘 다른 친구들이 마중물이 되어줬지만

똘이도 한번쯤은 친구들의 마중물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아니, 똘이가 그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어쩌면 욕심이고 편견일지 모른다.



똘이야, 다만 그 안에서 잘 살아남거라.

그것 또한 배움일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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