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by DJDJ


네가 마냥 아가였던 시절에도 네 엄마와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비록 의사 표현이 불가능했을지라도(아니, 어쩌면 어른들이 흔히 받아들일 수 있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충분히 너의 생각과 감정들을 드러냈는지도 모른다. 그냥 어른으로서 익숙해져 있는 말과 행동들이 아니기에 너의 표현에 충분한 존중을 보여주지 못하고 무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곤충의 눈은 육각형의 낱눈을 엄청나게 많이 붙여 겹눈을 만들어 다양한 빛의 각도를 받아들이고 이를 해석하여 피사체의 모습과 거리감 등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그 겹눈이 또한 볼록하게 생겨 사방을 동시에 볼 수 있고,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기가 막히게 포착해 낸다고 한다. 그런 인간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첨단 과학의 눈을 가지고 있는 곤충이지만, 카메라 줌을 계속해서 밀어서 그 눈을 점점 곤충의 몸의 매우 작은 일부분으로 만들다 보면 어느새 그 곤충은 사람의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미물일 뿐이다. 이런 곤충을 마치 별거 아닌 것처럼 파리채로 휘휘 휘둘러 무시해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어른들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가들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아가들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최첨단 의사소통 체계가 있는데 어른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아가들을 향한 어른들의 무지와 무시에 대해 겸손한 생각을 해 본다.) 최대한 너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노력하고 그 뜻을 존중하려고 했다.

“우유가 먹고 싶지 않았는데 우유를 줬구나... 아빠가 미안해요. 하하”

“자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불을 끄고 놀아주지 않았구나? 에구~미안해. 우쭈쭈”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네 표정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며 너를 존중했다는 사실에 만족의 웃음을 짓곤 했다. 끝없는 오만함, 자화자찬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도 될 수 있으면 옷을 살 때도, 음식을 시킬 때도 너에게 직접 물어보고 고를 수 있게 했다. 세 돌을 앞둔 어느 연휴,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고 난 후, 잠시 쉴 겸 2층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가득 채운 쇼핑 카트를 가게 옆에 두고 현정이의 손을 잡고 31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이 전시되어 있는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키가 작아 아직 안 보이지~?”

하며, 아직 글자도 읽을 수 없는 네가 아이스크림을 볼 수 있게 번쩍 들어 올리고 길게 전시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왔다 갔다 하며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너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너는 요즈음 민트색을 무척 좋아한다.(훗날 역시나 핑크 공주로 변하셨다.) 역시나 피스타치오 아몬드를 직접 고르셨다. 물론, 아몬드는 드시지 않아 아이스크림과 함께 현정이의 입에 들어갔던 아몬드는 아이스크림을 벗고 딱딱한 질감을 유지한 채 입 밖으로 나왔고, 나는 수저로 그것을 받아 다시 내 입으로 넣어야 했다. 아몬드를 먹지 않겠다는 너의 의사도 나는 최대한 존중하려 했던 것이다. 장 보느라 지쳐 있는데도 민트색으로 너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갈색의 아몬드가 왜 이렇게 나에게 여유를 주는 것일까? 씹히는 아몬드는 한없이 달기만 했다.


어제는 와이프에게 너를 데리고 여의도 IFC 몰로 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데이트도 할 겸, 네 엄마 말마따나 수요일 정도, 그러니까 일주일의 가운데에 멈춰 서서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갖고 여유를 찾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잠시 나를 멈춰 준.. 아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네가 많이 큰 것 같다. 너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은 나의 인생에서 갑자기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변해 버렸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 혼돈 속에서 너라는 존재의 탄생이 이제야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고맙고 참 감동스럽다.


그런데, 그 감동도 잠시.. 지나가는 길에 들른 서점에서 그만 옷에 쉬를 해 버리셨다. 본인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쉬하러 가야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우리를 난처하게 한다. 덕분에 옷이며 신발이며 득템도 하시고~^^ 그렇게 엄마 속을 타게 했던 너를 퇴근하고 만났더니, 슬며시 눈치를 보며 내게 다가온다. 네 엄마는 용변 실수에 매우 엄격하니까. 아마 보지 않아도 너를 많이 혼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를 만났으니 구세주를 만난 것이었겠지. 그런 너를 어떻게 껴안지 않고 그냥 둘 수 있을까? 마치, 너의 엄마로부터 너를 보호하기 위해 어디선가 달려온 것처럼

“그럴 수도 있지~쉬가 많이 마려웠었구나?”

하고 너를 보호하는 돈키호테가 되었다.


그런 우리를 보고 네 엄마는 피식 웃는다. 어느덧 너는 이제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있었다. 우리 가운데에 오롯이 하나의 존재로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의 감정들도 이제는 수동적으로 부모가 수용해야 직렬연결에서 이해하고 교류해야 하는 병렬연결로 달라졌다. 현정이도 이제 진정한 가족 구성원이 된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너와 관련된 어떤 일들은 물론, 우리 가족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너의 의견을 구할 것이다. 30대 초반 갑작스레 가정을 꾸리게 되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확고한 신념 중에 하나는 가족의 의사결정 과정이다. 의사결정의 주체는 가장이 하지만,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네 엄마와 네가 독립적인 의견으로 모두를 설득하고 토론하는 과정의 중요함을 존중하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 서로 많이 다투고 그로 인해 생채기가 나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그러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성숙해져 가는 우리는 가족이니까 말이다. 이제부터 너는 나와 네 엄마처럼 우리 가정에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주주이다. 1:1:1이라는 거 잊지 말아다오. 나 또한 평생 동안 결코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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