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너와의 데이트. 그러니까 너와의 둘만의 시간이 나의 인생에서는 꾀나 수준 높은 도전이었다. 성공할 확률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많은 게임이지만, 그래도 반드시 해보고 싶고 성공해야만 내 스스로 좋은 아빠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시험대이기도 했다.
사실 나의 목표는 너와 둘만의 여행이다. 2~3일 너와의 둘만의 여행을 그렇게 해보고 싶다.(훗날 네가 7살이 되어도 너에게 허락을 받지 못한 나의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둘만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야 한다. 조심스럽게 시작한 너와 둘만의 시간.. 처음은 네가 2살이 되던 해였다. 너를 낳고 성당을 거의 가지 못하고 아빠와 엄마는 육아전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중, 그 날은 성당을 꼭 가고 싶어졌다. 결국 네 엄마만 다녀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내가 현정이랑 있을 테니까, 다녀와. 1시간 정도인데 뭘.”
“정말 괜찮을까?”
태어나서 단 1분 1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엄마와 너. 그 관계에서 가끔 등장하는 아빠인 내가 지금 너에게서 엄마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 나도 걱정이 되었지만, 애써 웃으며 슈퍼맨인 척했고, 네 엄마는 아마 나보다도 훨씬 불안해하며 현관문 밖을 나섰을 것이다. 성당까지 가는 길이 얼마나 멀다고 계속해서 전화를 하며 네가 잘 있는지 몇 차례 확인을 했다. 그래도 1시간이다. 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계속해서 시계만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를 본 시간보다 시계를 쳐다본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드디어 너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더니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역시, 엄마가 없는 게 분명해.’라는 생각이 네 머릿속에 확신이 섰는지 목청을 열고 입을 벌려 울기 시작했다. 분명 눈을 감고 엉엉 울고 있는데, 감은 눈 사이로 왜 닭 똥 같은 눈물은 계속 흐르는지 모르겠다. 애를 들고 안았지만, 이 품은 분명 내가 알고 있던 좋은 냄새가 나던 엄마가 아니었다. 당황한 나보다도 더 당황 해하는 네 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너를 안고 진정시켰다. 길어야 10분 남짓이었던 그 기억은 치명적이었다.
“여보 미안해, 금방 전까지는 잘 있었는데, 갑자기…”
그 이후로 너와 단둘이 있겠다는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너와 한두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하다 이제는 자신이 생겼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둘만의 시간이 행복해졌다. 오늘도 조금은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네 엄마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너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너와의 데이트는 1분 1초도 아깝지가 않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주차를 하고 문을 열어주러 얼른 내려 차의 뒤를 돌아가는 동안에도,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사이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마저도 무척이나 설레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더 많이 함께하지 못해서, 더 여유롭지 못해서 아빠로서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오늘은 나를 마치 자기 동생처럼 챙겨주려는 너의 모습에서 지난날 나와 있는 시간이 그렇게 힘들었던 네가 언제 이토록 자랐는가 놀랍기만 하고, 아쉽기만 하고, 이대로 훅 지나가버릴 시간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생애 처음을 스티커 사진도 찍고, 조금은 더웠지만 연인처럼 너와 두 손잡고 산책도 했다. 파주의 헤이리 마을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다른 연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을 만큼 난 우리의 모습이 좋았다. 먹고 싶다는 파스타도 사주었고, 함께 디저트도 먹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어린이 박물관 같은 곳을 관람하던 중, 랄라(우리 집에서 응가를 부르는 말)가 마려웠는지 다급해하는 너를 들쳐 업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어린이 화장실이 있어서 네 용변기 앞에 나를 위한 자리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왜 그런지 너는 항상 랄라를 할 때에는 눈물을 한두 방울 흘린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눈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그게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안쓰러워 내 힘을 나눠주려고 힘들어하는 너를 살짝 안아주고 등을 쓸어내려 주는 습관이 생겼다. 그날 화장실 안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그날은 네 앞에 앉아서 너무 귀여운 너의 랄라 영상을 촬영 중이었다. 갑자기 네가
“아름다운 노래 나오니까 똥 엄청 잘 싼다.”
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사랑스러움이 너무 터져 나와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영상으로 간직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뒷정리를 하고 나와 걸으려는데,
“옷에 싸지 않아서 다행이다. 혼날 뻔했는데…”
라고 말하는 너에게 갑자기 미안함이 밀려왔다.
“현정아, 옷에 똥을 싸도 괜찮아. 그래도 아빠는 현정이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돼”
하고 안아주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이 펼쳐졌다면 나는 너에게 더 미안했을 것이다. 오히려 옷에 실례를 했다고 자주 핀잔을 주는 네 엄마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집에 가서 혼내 줄 생각으로 마음속에 화를 고이 접어두고 너와의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저녁도 밖에서 먹고 가자고 돈가스집을 두 손으로 허우적대며 가리키며
“여기서”
라고 간절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네 모습에도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와 자러 들어가는 길에,
"매일매일 일요일이었으면 좋겠다. 아빠랑 노는 게 재밌어."
라고 이야기하는 너의 고마운 눈을 보며, 내일부터 다시 회사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현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이젠 회사에 가야 한다고 너를 실망시켜야 하는 눈물 머금은 이야기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참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조금은 배운 것도 같다. 그 눈물이 내 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속으로 삼키는 방법도 이제는 알 것 같다. 오히려 눈물대신 웃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니까…
내가 가진 게 많았다면 내일도 모레도 늘 너와 함께 있을 수 있을 텐데. 너를 키운다는 게 힘든 게 힘든 게 아니었는데.. 힘들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고 아빠로서의 부족함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너무나도 미안하다. 아마, 이 세상의 모든 직장인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싶어 서글퍼진다. 그래서 우리네 부모님들은 꼭 당신들처럼 힘들지 않게 살라고 자식들을 가르쳤던 거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어쩌면 이런 나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건 아닌가.
도대체 시간이란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