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의 어느 날, 너는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다. 어느새 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나고, 본인의 색깔이 자리 잡은 걸 보면서 도대체 누구를 닮았길래 저러나 싶다가도.. 어쩌면 보라와 나의 성격과 가치관이 너에게 빠른 속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만 같아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내 삶을 살면서 가장 날카로웠을 때가 언제였을까.. 아마도 너의 엄마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네 할머니의 마음을 몰라주고 나의 고집만 피우다가 우리 식구 모두 마음 아프고 눈물을 흘려야 했었던 기억이 날이 파랗게 선 칼끝처럼 내 기억에 날카롭게 머물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을 그때는 모른 채, 뭐가 그렇게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시간들이었다. 결혼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두 번 다시 하기 싫은 것 중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것이 결혼이다. 이 경험은 딱 한 번이면 충분하다. 재혼은 할지언정 결혼은 정말 하기 싫다. 결혼식이 끝나고 뒷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호텔방에 드러누웠을 때의 해방감이란, 아마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 사람보다 결혼식이 끝나서 행복하다고 서로 웃는 커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너도 그럴 것이다. 만일 네가 부모의 품을 떠나 누군가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첫 발은 그렇게 함께하는 행복보다 해방의 행복이 먼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결코 너를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다.)
너의 엄마는 어째서 이렇게 달라졌을까.. 아빠의 불만이 섞인 투덜대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의 판단이 맞는다면 네 엄마는 분명히 변했다. 내가 알던 그녀는 착하고 여리고 부드럽게 나를 위해주던 아담한 소녀였다. 그러던 그녀가 시간이 지나 앙칼지고 날카롭고 대하기 어려운 조심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그간의 육아 인생을 돌이켜보면 이해가 된다.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포기한 채 너와 나만 바라보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위험으로부터 너를 지키기 위해 억척스러워야 했으며, 나와 너를 예의주시하느라 시야가 좁아졌을 수도 있고, 좀 더 좋은 모습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너와 나의 행동에 예민해지고 지적하는 모습에 화가 들어차 버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예전과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 온전히 제자리에 있다고 하면 오히려 변한 상황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거리를 두며 본인만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건 더 골치 아픈 일일 것이다.
그래도 네 엄마는 아주 많이 날카로워졌다. 심지어 본인이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것을 참다 못 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상담을 한 번 받아보는 게 어떨까?”
정신과 상담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아무래도 갑자기 중간 생략하고 너무 높은 단계에 도전하는 것 같아 여러 기관을 찾다가 육아 관련 카운슬링을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있어 그곳을 예약했다.
많이 떨렸던 기억이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너였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성이 결여된 너의 모습이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부분으로 들통이 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이미 마음은 울고 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센터로 걸어 들어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가서 그곳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들어도 상처받지 말고 겸허하게 받아들이자고 서로 격려하며 걸음마가 서투른 너를 안고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다. 63빌딩의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듯한 높이로 착각할 만큼 피곤함과 긴장감이 몰려왔다. 먼저, 오늘의 상담으로 모든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너의 엄마가 받을 상처와 아픔이 걱정이었다. 오롯이 본인의 책임으로 날아올 그 화살을 내가 어떻게 뽑아주고 치료를 해 줘야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선뜻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거기에다 그 흔한 교육기관 하나 보내주지 못한 못난 부모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소리와 함께 그로 인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무언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나 않을까 그런 너를 바라볼 자신이 없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상담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이는 매우 정상적이에요. 또래 친구들보다 더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어요. 오히려 엄마가 걱정되는데요.”
듣고 보니, 네 엄마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너와 씨름하며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던 것이다. 일종의 우울증이었다.
“남편분께서 많이 도와주셔야 해요. 지금 엄마는 혼자 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네 엄마는 많이 다쳐 있었던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너는 새로운 장난감을 향해 아장아장 걸어가고 입에 가져가 넣어보려고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나는, 그리고 네 엄마는 울면서 지켜보기만 했었다.
결국, 너를 교육기관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참고로 지금 내가 사는 사회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가 너무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낳아도 부모가 돌보는 시간보다 보육기관에 맡겨지는 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나의 주변 사람들만 보더라도 외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이 될 정도로 맞벌이가 많다. 하지만, 네 아빠 엄마는 부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너를 엄마의 손에서 자라도록 하겠다고 결정했다. 요즈음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보육기관 교사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학대 행위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 곳 중 하나가 네가 가게 될 곳은 아닐지 나와 네 엄마는 늘 걱정을 했고, 그러다 내린 결정이니, 훗날 부모 가진 것이 부족해 보여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어쨌든, 카운슬링 이후로 동네에 있는 교육기관을 찾느라 아빠 엄마는 분주해졌다. 이곳저곳 비교를 해보다가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하기도 했고,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가격은 비싸지만, 선생님 1인 당 돌보는 아이들 수가 적은 놀이 학교를 선택했다. 몇 군데를 가 보았지만, 시작부터 아동학대의 주범으로 비추어지는 선생님들이 좋아 보일 리 없었다. 매번, 뭔가 단점만 찾아내면서 여기는 이래서 안 되고, 저기는 저래서 안되고 하며 더 나은 곳을 찾았다.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곳을 찾았고, 이사 후에도 가까운 곳으로 너를 보내게 되었다. 처음으로 너에게 사회생활을 허락한 순간이었고, 엄마와 떨어지는 최초의 이별이었다.
걱정과 기대가 난무하며 복잡한 생각이 그득하던 그날이 기억난다. 한없이 소중한 나의 보물을 상자 밖으로 꺼낼 때, 혹여 떨어뜨리지나 않을까 벌벌 떨며 조마조마한 순간 같았다.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네 엄마에게는 대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여보, 현정이 잘 해낼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하며 안심시켰지만, 누군가가 나를 안심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회사고 뭐고 그냥 달려가서 하루 종일 너의 곁에서 네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지켜봐야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게 적응하는 너의 모습이 새삼 놀랍기만 했다. 그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자라날 너에 대한 우려와 조금이나마 나 자신을 돌아보며 차분함을 되찾고 더 나은 아빠가 되려는 노력을 부족하여야 할 나와 또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며 스스로의 자리를 되찾아야 할 너의 엄마에 대한 기대감들이 현실적인 어려움들과 함께 조금씩 밀려오는 밤이었다. 늘 부족한 아빠이고, 늘 아쉬운 엄마인데, 조금이나마 삶의 경험이 다양해지고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하는 네가 아무 탈이 없기를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아비로서 또 한 번 지나온 인생을 후회하게 된다. 이럴수록 나약해지면 안 되는데, 어떻게든 더 좋은 사람, 더 나은 아빠로서 너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 그 부족함만으로도 고민스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