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할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에 있는 피아노학원에 갔을 때, 나의 나이는 7살인가, 8살이었나.. 1990년이 되지 않았던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에 있던 단층 집에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피아노는 달랑 두 대가 놓여 있었고, 그마저도 오래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람 손이 많이 타 있는 원목으로 된 낡은 중고 피아노에 건반도 탁한 색으로 광을 잃어버렸던 모습이었던 기억이 있다.(지금 생각해도 너의 할머니는 왜 나에게 피아노를 시켰던 것일까.. 궁금하다.) 어쨌든 음악과의 첫만남이었던 그 날을 잊지 못한다. 건반을 누르는데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고, 내 또래의 어떤 여자아이가 레슨을 받으며 양손으로 연주를 하던 모습에 매료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와의 인연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 이름도 선명한 ‘서울피아노학원’으로 이어졌다. 원장 선생님이 서울대 음대를 나오셨고, 나보다 2~3살 많은 형제를 키우던 원장선생님은 예술인답게 비범한 말과 음악에 몸을 맡긴 신들린 듯한 레슨으로 많은 원생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곳은 피아노도 10대 가량 있었고, 레슨 선생님도 두 분이나 더 있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우는 형제와 함께 원장선생님 모녀가 3중주의 조그마한 음악회를 하던 것이다. 제주도라는 곳의 특성과 내가 살던 시대적 배경에서 그런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하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턱시도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하고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던 그 형들이 궁금하다. 원장선생님의 혼을 따라 계속해서 음악을 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피아노의 재능이 조금은 있었던 걸까.. 원장선생님은 나의 재능을 아까워했다.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 학원을 계속해서 다녔고 중학교와 멀어진 거리를 핑계로 피아노를 멈추었지만, 한 동네에 살던 원장선생님은 가끔씩 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원장선생님 댁에서 직접 피아노 레슨을 봐 주기 위해 나를 초대하곤 했다. 하지만, 원장선생님은 더 이상 피아노학원을 운영하지 않았고, 조그마한 햄버거 가게를 동네에 냈었다. 학원 운영이 잘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훌륭하게 마무리를 하고 정리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햄버거가 맛이 없어 음식 장사는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남성성이 극대화되던 나의 중학교 시절 피아노는 자연스럽게 내 손에서 멀어졌다. 이상하게 피아노에 남자가 앉아있는 모습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바보 같이 말이다. 너의 할아버지가 어렵게 마련해 주었던 디지털 피아노를 정리했던 것도 그 때쯤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퇴근하고 집에 오셔서 나의 연주를 듣는 것을 즐기셨던 너의 할아버지의 기쁨도 그 때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나에게 피아노를 쳐 달라고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죄송함이 치밀어 오른다. 어쩌면 아버지는 나를 통해 오스트리아의 어느 음악회의 한 가운데 앉아서 고급스러운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을 대신하셨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음악회 중간에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네 집에 모여 앉아 음악방송을 보며 SES와 핑클에 열광했고, HOT와 젝스키스의 맞대결에 흥분하며(참고로 너의 엄마는 젝키의 광팬이었다. 그러고 집 근처에 있어서 그냥 한 번 가 보았다고 말한다. 참..나..) 음악을 곁에 두며 지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노래하는 동아리에서 밴드 음악을 흉내내면서 노래를 만들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무척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어쩌면, 네 아빠는 음악을 할 때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공연장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혼신의 힘으로 노래를 부를 때 나는 100% 몰입해 있었다.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은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맨하튼에서 외로운 날들을 보내던 시절 한인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며 보낸 1년은 추운 겨울 날 잠시 찾아오는 따듯한 숨결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음대생들과 함께 음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 곳에서 줄리아드 음대와 매네스 음대에 재학중인 내 또래의 사람들과 성가대 활동을 같이 하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오케스트라 하모니가 저절로 완성되었다. 합주 한 번 해 보지 않던 사람들이 토요일 오후 하나 둘씩 모여 자기의 악기를 꺼내 소리를 내면 지휘자의 손길에 어느새 완벽한 하모니가 되곤 했다. 그 속에서 노래를 하면서 내 주변을 맴도는 그 아름다운 음악에 감동해 벅찬 가슴을 쓸어 내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음악은 너에게 다다랐다. 생각해보렴. 너의 사촌언니, 오빠의 오케스트라에서 봤던 윤서언니의 멋진 오보에 연주부터 가끔씩 뜬금없이 너에게 전화해서 듣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몇 분이고 그저 연주에 열중하시는 너의 제주 할아버지의 색소폰 연주까지.. 너에게 앞으로도 계속 음악과 가까운 인생을 살게 하고 싶다. 그래서 선택한 야마하 음악교실에서 너는 처음으로 음악을 체계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너의 엄마는 음악 교육에 관한 전권을 나에게 위임했다. 유일하게 나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이다. 나는 늘 너에게 좋은 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싶고, 늘 음악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익혀 나갔으면 좋겠다. 좋을 때에도 슬플 때에도 분노할 때 마저도 음악이 너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나를 닮았으면 조금이나마 음악적인 재능은 있을 터이고, 네 아빠의 평소 관심과 마음가짐이라면 너는 분명 좀 더 음악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어떠한 음악이라도 상관없다. 음악이 너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너의 음악 인생과 동시에 나 또한 꾸준히 너의 곁에서 음악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음악이 너와 나를 연결하는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또 하나의 간절한 바람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