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이 된 너는 부쩍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아가 강해지는 만큼 타인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야 하는데, 사람이란 늘 균형에서 벗어난다. 하물며, 사교적인 경험이 부족한 어린이들은 균형감각이라는 것과 아이스크림을 맞바꿔 먹는다. 하긴, 어른들이라고 그러한 균형감각을 훌륭하게 유지하지는 못한다. 나이를 떠나 사람이라는 존재는 늘 균형을 찾아가는 존재이므로 균형점을 벗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군대에서 사격훈련을 할 때 눈앞에 가늠자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표적과 가늠자 그리고 조정간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누군가 그렇게 감정의 혼돈을 겪고 균형에서 저만치 멀어진 모습을 나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참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며 마치 나와 많이 친하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는구나 하고 위안이 생기기도 한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하고 윽박지르고 혼내고 또 차마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말도 마구 퍼붓는다. 사랑한다고 모든 것을 다 해 주겠다며 잠든 아이를 껴안고 바라보며 굳게 다짐하던 극강의 책임감은 어디로 사라지고 어느새 아동학대 수준에 이르기까지 아이를 몰아붙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균형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더욱 화를 내게 되고 그 불똥은 다시 내 아이에게 튄다. 어른이 되어서 분명하게 깨닫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내가 뱉은 그 모든 말들은 신기하게도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심지어 말을 내뱉는 순간 머리보다 마음이 앞서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갑게 그 온도를 미지근하게 만들지 못하는 바람에 돌아오는 말은 더 뜨겁고 더 차가운 기운으로 나를 괴롭힌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말들을..
어느 추운 겨울 날.. 어디에선가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는 너를 참다못한 아빠, 엄마가 작정했다.
“그렇게 계속 잘못했다고 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데려다주고 아빠, 엄마만 집에 갈 거야.”
근엄한 목소리로 큰소리를 쳤다. 와이프와는 눈짓으로 서로의 마음을 맞추고 ‘좋아, 오늘은 끝까지 해보자.’ 라는 결연한 의지로 집을 지나쳐 어두운 길가로 차를 몰고 갔다.
“여기다 너 두고 갈거 야. 경찰 아저씨 오라고 할 테니까 서 있으면 경찰차 올 거야.”
정말인 줄 알았는지 조금 의기소침해하던 너는 그래도 바득바득 대들었다.
"싫어! 싫다고!”
울기 시작한 너는 그래도 그 고집만큼은 절대 굽히지 않았다. ‘독한 것..’ 속으로 생각하며 운전 중이었던 와이프가 정말 차를 세우자 걷잡을 수없이 소리치며 울어댔고, 나는 이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있던 너의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다. 조그만 몽돌 같은 손으로 계속해서 나를 거칠게 뿌리치며
“싫다고! 아빠 엄마랑 내리지 않으면 안 내릴 거라고!”
혼자서는 내리지 않겠다고 서럽게.. 그렇게 서럽게도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요하고 싶지 않았고, 어렵게 잡은 버릇을 고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든 나머지 나는 억지로 벨트를 풀고 자동차 문을 열기까지 했다. 발버둥 치며 울며 소리치는 너의 옆모습, 그 조그만 입에서 차가운 입김이 퍼져 나갔다. 그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하면 됐다 싶어서 네 엄마는 나를 말렸지만.. 그래도 나는 버릇을 고치고 싶었다. 결국 너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고, 나는 잘 타이르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릴.. 그 약속에 못 이긴 척 집에 돌아왔다. 잘 했던 것일까? 조금은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고집을 꺾었고 잘못에 대한 사과도 받았으니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현정이의 머릿속에 무언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각인시켰으리라 자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가왔다. 그래도 웃으면서 아빠, 엄마 사랑한다며 잠자리에 드는 너의 모습에 결국 나는 무너져버렸다. 그 일들이 어떻게 그렇게 후회가 되는 걸까. 내가 무얼 잘했다고 너에게 그렇게까지 몰아붙였어야 했던 걸까. 나부터 다른 모습으로 너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내 고집을 부리고 내가 맞다고 어린아이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앉아있던 모습에 스스로 더 힘들어지고 감정이 지쳐갔다.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그 경계선이라는 것이 진정 어렵다.
앞으로도 균형점을 찾기 위해 나는 계속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매번 너무한 것은 아닌지, 조금 더 할 것을 멈추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후회의 연속이겠지만, 그게 부모가 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너에 관한 일이라면 그 결론은 항상 부모의 잘못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 후회의 시간들이 쌓여 결국은 아버지가, 어머니가 되어 가겠지. 뒤돌아보면 자식에게 늘 미안한 사람은 바로 부모이지 않더냐. 하지만, 현정아, 네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무수한 선택의 순간에서는 훗날 결코 네 스스로 미안해지지 않을 선택을 하길 바란다. 균형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못 미칠 만큼 스스로 움츠려 들었을지라도 그로 인해 훗날 네 스스로 잘못했다고 후회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고 노력하겠지만, 결국 먼 미래의 어느 순간 그 선택에 대해 회한의 감정을 품게 되겠지만, 그래도 너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 선택하였다면 그 이후에 균형에 다다르도록 너의 선택을 옳게 만드는 것까지도 너의 몫인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