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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에 죽으려고 했는데

by 어떤

서른 살에 죽으려고 했는데, 평생 함께하고픈 사람이 생겼다.


서른 살에 죽으려고 했다. 우울증을 앓아서가 아니다. 한 중학생 때쯤인가, 그때부터 내 가치관이었다.


늙는 게 싫었다. 탄하고 쌩쌩한 내 몸이 마음에 들었고, 늙으면 살도, 체력도 축 처질 내 모습이 싫었다. 리고 앞으로 인생이 크게 기대되지도 않았다. 이게 전부지만 나에겐 중요한 이유다.


누군가는 겨우 그까짓 이유로? 라며 비웃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장난스럽게 넘어갈 지도 모른다. 나는 진심이다. 스웨덴 안락사 시설도 알아놨고, 스웨덴에 가기 위해 돈도 모아놨다.


24년 1월까지만 해도 내 이런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 는 27살. 10일간 제주도 종주를 함께한 친구들에게도 털어놨을 정도이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간 소개팅. 소개팅에서 그이를 만났다. 그이는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회사원이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딱 그 정도.


첫 만남, 이상하게도 둘이 똑같은 신발을 신고 왔다. 신기하지만 아직은 별로..

두 번째 만남, 감기 걸린 나를 위해 따뜻한 음료수를 사왔다. 고맙지만 아직은 별로..

세 번째 만남, 나는 마음이 안 생겼는데 그이가 고백을 했다. 거절해야 하는데 거절을 못 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거절을 못 해서 사귀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결혼을 준비 중이다.


사귀기로 하고 바로 그 다음 데이트 장소는 서울숲이었다. 손을 잡고 걷고 있는데 문득, '어, 결혼할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그이가 안경을 쓰며 나를 돌아보는데 문득, '어, 남편이다'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300일이었다. 300일 동안 그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간다. 더 커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계속 커진다. 하지만 터질 것 같진 않다. 안 터지는 풍선 같달까.


몇 년 뒤면 죽으려고 했던 나인데, 앞으로의 인생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나인데, 평생 함께하고픈 사람이 생겼다.


앞으로의 인생이 기대된다.


사랑하는 그이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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