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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을 하다가 그만뒀다

by 어떤

비건을 하다가 그만뒀다.


23년 여름, 환경 연수를 들었다. 연수에서 강사님들께서 여러 책과 영화를 소개해주셨다.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봤다. 우리가 먹는 동물도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다는 거, 알고 있지만 다시 나에게 상기시켜줬다.


책은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과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를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보선 작가의 '나의 비거니즘 만화'를 읽었다. 책을 읽으니 비건을 실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건이 논리적이었고, 나는 설득당했다.


처음부터 비건을 하면 힘드니, 동물성 식품을 천천히 줄이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실을 다 알아버려서.


비건이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동물권

둘째, 환경


집에 있던 동물성 식품은 가족들에게 나눠줬고, 나는 철저한 비건이 되었다. 장을 볼 때 원재료를 꼼꼼히 살펴 동물성 재료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식품만을 골라 샀다. 동물성 재료는 안 들어가도 동물을 해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면, 먹지 않았다.


비단 먹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에도 변화가 컸다. 비건 인증 마크가 있는 화장품만 구입하고, 섬유유연제를 사더라도 비건 인증 마크가 있어야 한다. 비건 모임에 들어가 활동을 하기도 했다.


어려움은 있지만 비건이 된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단어 하나가 생겨서 좋았다. 자존감이 올라갔다.


6개월 차 즈음에 비건과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평생 비건을 할 줄 알았던 내가, 이제는 어디 가서 비건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자아 정체성이 하나 똑 떨어진 것 같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우울한 날에는 비건을 그만둔 내 자신이 미워진다.


지금은 비건 지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동물을 사랑한다. 화장품이나 가정 용품을 살 때에는 무조건 비건 인증 마크가 붙은 것으로 고른다. 신발이나 가방, 옷을 고를 때에도 인조 가죽으로 된 것인지 꼭 확인하고 구매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건이 된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비건을 그만뒀고, 언젠가 내가 다시 비건이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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