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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호 Sep 29. 2024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었던 까닭 1

모두가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먹고살아야 하니까.


맞다.

내가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의지할 배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의 경제를 나 혼자서 온전하게 책임지는 상황이었다면

퇴사 이후의 직업을 정해 놓지 않은 채 그만두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외벌이 결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럴 만큼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의 진심 어린 동의가 없었다면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너무나 고맙다.

의원면직 후 무직을 맞이한 첫날의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집 근처 수변을 허탈한 마음으로 걷는데 문득,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완전히 의지하는 상황이 너무나 생경하게 느껴졌다.

타인으로 만나 가족이 된 남편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의지하다니.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마치 내가 남편의 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업무상 어려움이 쌓여 고통받다 목숨을 잃는 공무원들의 이야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은 어떤 처지에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가정 경제를 혼자 온전하게 책임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일이 아니면 경제상황이 무너질 것이라는 무력감에 휩싸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더 병들었던 건 아닐까.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 할 수 있었다면, 마음이 심각하게 곪기 전에 나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랬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의지할 남편이 없었다면, 남편이 나의 퇴사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동의하였더라도 그것이 불화로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면, 스스로 그만둘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견디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살고 있었을 수도, 여전히 괴로움의 나날을 견디고 있을 수도, 마음의 병이 커져 이성의 끈을 놓치고 삶에 대한 끈마저 놓쳤을 수도.

가지 않은 길의 결과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당시에 나는 공무원직을 지속하는 미래를 비관적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면서 희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만둘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의지할, 나의 퇴사를 비난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내 등을 토닥여주는 남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가지 않은 길의 결과는 모른다는 것.


어쩌면 공무원이 아닌 나의 삶이 더 풍성하고 행복해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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