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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호 Oct 02. 2024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었던 까닭 2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결정적 한 가지

출근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슥-슥- 지나가는 수많은 간판들과 빌딩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저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

'공무원을 그만둔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볼까?'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날들은 몇 년 동안 매일매일 지속 되었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기에 대책은 없었을지언정 마냥 무모하기만 한 퇴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에 나는 주말에도, 가족과 여행 중에도 마음 한편에 늘 업무의 불안을 안고 있었다. 세차게 도리질 치며 잊으려 애써도 늘 한 몸처럼 내 안에 또아리 튼 불안감.

벗어나고픈 절박함.




내겐 아들이 둘 있다.

첫째와 둘째는 아기 때부터 집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아빠와 공 차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주말 오전, 남편과 아이들을 따라나선 나는 교문 앞에만 서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일하는 학교도 아닌데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숨이 막혔다.     

그 학교에서 주말 공사라도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었다.

학교 공사는 내가 가장 부담스러워했던 업무였기 때문이다.


학교는 바람 잘 날 없는 곳.

크고 작은 공사들이 매년 줄을 잇는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눈이 오면 눈이 와서, 학교 건물은 병원을 수시로 드나드는 환자처럼 늘 아프다.

신도시에 새로 생긴 학교가 아니고서야

최소 10년, 많게는 50년 이상 된 노후 건물들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1년 내내 뻥뻥 터지고 그것을 처리하다 보면 해는 훌쩍 바뀌어 있다.


규모가 큰 공사라도 진행하게 되는 때면 내 안의 부담과 불안은 그에 비례하여 몸집을 키운다.

교육행정 일반직인 나는 '일반직'이라는 그 이름답게 학교와 교육청을 오가며 이런저런 제너럴한 일들을 많이 맡아했다. 예산, 회계, 시설, 노무, 공무원 인사.. 그야말로 두루두루.


다만, 시설과 공사만은 제너럴로는 해결이 안 되었다.


학교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큰 규모 공사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고, 학교의 행정실장은 공사 관리 감독 책임자가 되어 많은 것들을 결정하고 조율해야 한다.

제너럴이 쌓여 프로페셔널이 되면 좋으련만......

시설 문제와 공사라는 과제 앞에서, 나는 대학 수학을 숙제로 받은 여덟 살 어린아이였다.


시설과 공사에 늘 따라붙는 말은 '안전'이다.


내가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내가 이런 결정을 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잘 모른다'라는 자기 객관화가 자기 불신으로 이어진다.

제너럴 포지션에 어울리지 않게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것도 한몫한다.

시설 관련 업무는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당면한 현실은 내 생각과는 괴리가 크다.


앞서 말했듯 갈수록 학교 공사의 규모는 커지고 있고, 그런 공사들이 잦아지고 있다.

여기저기 수시로 고장이 나는 노후 건물은 때때로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없어 애를 먹인다.

의사도 아닌데 환자의 MRI를 판독하고 수술방법을 결정해야 하는 막막함을 생각해 보라.


학교시설관리계의 돌팔이였던 나는

이제 그곳을 떠났다.




배우자를 결정할 때 너무 많은 요소를 고려하기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한두 가지에 집중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절대 용납이 안 되는 한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배우자 결정의 핵심 요소는 내게 있어 직업의 세계에서도 통용된다.

시설 관리와 공사 관리 감독은 내게 용납되지 않는 한 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14년을 동고동락한 교육행정직과 이별했다.

나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책임지겠다던 듬직한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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