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기 쓰기 힘들다면?
매일 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정성껏 적어 내려간 글씨들이 마치 강물에 띄운 종이배처럼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것 같다는 느낌 말입니다. 기록이 쌓이는 만큼 내 삶도 단단해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 저는 저의 시간에 ‘매듭’을 짓기로 했습니다. 바로 ‘월간 회고’를 통해서입니다.
저는 기록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말자고 늘 다짐합니다. 의욕에 앞서 주간 회고를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일주일이라는 단위는 생각보다 금방 돌아와 버거웠고, 일 년에 한 번 하는 연간 회고는 상반기의 기억이 가물가물해 깊이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정착한 것이 바로 ‘한 달’이라는 리듬입니다.
매달 말일, 한 페이지로 한 달을 요약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12개의 회고가 모이면, 연말에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일 년의 지도가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저에게는 이 한 달의 호흡이 가장 잘 맞았습니다.
저의 월간 회고는 조금 독특한 준비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말일이 되면 이번 달을 정리함과 동시에, 다음 달을 위한 '회고용 메모지'를 미리 만듭니다.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두고 틈틈이 떠오르는 생각이나 사건들을 메모해 두는 용도입니다. 한 달 동안 느슨하게 채워진 이 메모들은 말일이 되면 저의 일기장에 부록처럼 소중히 옮겨 적힙니다.
회고라고 해서 거창하거나 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은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짧게 답할 수 있는 11가지 항목을 정해두고 마음을 툭툭 얹어둡니다.
도전: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 시도했던 일
경험: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행동
시간: 오롯이 나에게 충실했던 순간
장소: 머물렀을 때 평온했던 공간
맛과 문장: 입안을 맴돌던 미식과 마음을 울린 한 줄
그리고 물건, 인물, 책, 영상, 음악까지 총 11가지 항목입니다.
단어 하나로도 충분한 이 가벼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희미했던 한 달의 윤곽이 선명해집니다. 내가 무엇에 기뻐하고 어디에서 위로받았는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만약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처럼 무겁게 느껴진다면, 한 달에 딱 한 번만 펜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지나온 시간 위에 작은 매듭 하나를 지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쌓이는 '역사'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