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원대로 시작하는 기록의 즐거움, 플래티넘 프레피

가벼운 가격으로 만나는 깊이 있는 기록의 세계

by 어디

제가 매일 손에서 놓지 않는 만년필, ‘플래티넘 프레피’를 소개하려 합니다. 요즘은 간편하고 예쁜 펜들이 참 많지요. 그럼에도 제가 굳이 만년필을 고집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독보적인 필기감 때문입니다. 손에 힘을 빼도 잉크가 종이 위로 부드럽게 흐르는 그 느낌 덕분에 글씨가 한결 정갈해집니다. 또 하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잉크 색상 중 내 취향에 딱 맞는 것을 골라 쓸 수 있다는 점도 만년필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입니다.


3만 원보다 값진 3천 원의 실용성

저는 현재 플래티넘 프레피, 그중에서도 가장 가는 EF촉 한 종류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펜의 최대 장점은 단연 가성비입니다. 3,000원대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품질을 보여주거든요. 개인적으로 3만 원짜리 펜이 프레피보다 10배 더 뛰어난 기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실용성을 중시하는 저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만년필의 외관보다는 일반 볼펜에 가까운 투박한 모습이지요. 하지만 저는 바디에 필요한 정보가 정직하게 적혀 있는 것이 오히려 편리하고 친숙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숫자에 담긴 오해와 진실

프레피는 닙 굵기에 따라 세 종류가 있습니다. 02(EF), 03(F), 05(M) 순으로 굵어지는데요. 많은 분이 이 숫자를 0.2mm 같은 절대적인 굵기로 알고 계시지만, 사실은 플래티넘사의 닙 번호에 가깝습니다. 실제 굵기는 사용하는 잉크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EF는 0.3~0.5mm, F는 0.7mm 내외, M은 1.0mm 내외라고 보시면 됩니다. 평소 하이테크 같은 극세필을 즐겨 쓰셨다면 만년필 특유의 두께감에 조금 놀라실 수도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처음 만년필을 만나는 분들을 위한 팁

처음 프레피를 구입하시면 본체와 카트리지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카트리지를 힘 있게 밀어 넣어 '딸깍' 소리가 나야 제대로 결착된 것입니다. 이때 피드 부분에 잉크가 번진 것처럼 보여도 당황하지 마세요. 사용하다 보면 잉크 흐름은 곧 안정화됩니다. 잉크를 끼운 후에는 피드까지 충분히 스며들도록 몇 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바로 글씨를 쓰고 싶으시다면, 뚜껑을 닫고 가볍게 몇 번 털어주세요. 공식적인 권장법은 아니지만, 가볍게 흔들어주는 정도로 만년필이 쉽게 망가지지는 않더라고요.


잉크에 따라 달라지는 글씨의 표정

저는 세 가지 잉크를 사용합니다. 회색 잉크인 이로시주쿠 '동장군', 그리고 검은색인 플래티넘 '카본 잉크'와 카키모리의 '코톤'입니다. 같은 EF촉이라도 잉크에 따라 굵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카본 잉크는 두껍고 부드럽게 써지는 반면, 코톤은 가늘고 사각거리는 맛이 있지요. 프레피를 구입할 때 들어있는 기본 블랙 잉크는 딱 그 중간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취향을 담은 특별한 에디션

기본 버전 외에 제가 좋아하는 두 가지 모델도 소개할게요. 투명한 바디가 매력적인 '크리스탈' 버전은 만년필의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데몬' 형태입니다. 저는 여기에 회색 잉크를 넣어 검은색 펜과 구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고쿠요 페르파네프' 콜라보 버전입니다. 프레피의 다양한 한정판 중 가장 디자인이 깔끔해서 아껴두고 있는 펜이지요. 두 제품 모두 F촉으로만 출시되었습니다.


만년필 세척이나 잉크 주입법 같은 관리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준비해 오겠습니다. 일단 프레피 한 자루를 곁에 두어 만년필이 주는 기록의 맛을 먼저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기록 생활에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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