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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am Choi Nov 03. 2020

[문학] EXHALATION, 숨

테드 창의 하드 SF소설 '숨'의 리뷰

*책을 읽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가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테드 창은 과학과 문학을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이미 너무나 유명해진 SF작가 중 한 명입니다. 

현존하고 있지만 이미 평가받기로는 SF계의 3대 거장으로 불린 

아서 클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나 어슐러 르 권 여사와 비견될 작가로 

이미 이름을 날리고 있으니까요.


이전 작품집이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한국에 소개되었던 테드 창은

중·단편 소설 하나하나가 모든 SF계의 상을 휩쓸고 

드뇌 빌리브 감독의 영화『컨텍트』로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간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리뷰할 『숨』은 이런 작가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입니다. 



작품은 '숨'을 포함하여 총 9개의 중·단편으로 이뤄져 있고

그중에서도 '소프트웨어의 객채 생애 주기'는 지금까지 테드 창이 쓴 가장 긴 편에 속하는 중편으로 

역시나 2010년 '휴고상 최우수 중편 소설'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여기서 모든 작품을 모두 조금씩 다루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나름 공통된 주제가 있는 작품 몇 개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제가 이해한 내용을 요약해보겠습니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알라딘이 나올 것 같은 무슬림 세계가 배경입니다. 이곳에 5년 10년 전후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의 문(타임머신)을 가진 상인과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나름대로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비극적 사고를 통해 아내를 잃게 된 인물입니다. 그는 아내를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에 험한 말싸움을 하고 길을 떠나서 그런 자신을 자책하며 평생을 후회합니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자 상인이 알려준 시간의 문을 통해서 과거로 이동하죠. 그러나 다른 매체에서 나온 타임머신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다만 과거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죠. 


작가의 말에서 테드 창은 이런 타임머신의 개념을 물리학자 '킵 손'의 타임머신 개념을 인용했다고 말하며

'킵 손의 수학적 분석을 통해 타임머신은 과거를 바꾸지 못하고, 시간선의 경우도 자기모순이 없는 단 하나의 시간선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는 점이었다'라는 개념이 이 소설의 모티프였다고 합니다. 배경이 무슬림인 이유는 운명에 순응하는 태도가 이슬람 신앙의 기본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 채택했고요. 


2. 우리가 해야 할 일

 미래에 '예측기'라는 물건이 발명됩니다. 이 기계는 자동차 문을 열 때 사용하는 리모컨처럼 생긴 작은 기계입니다. 버튼이 하나 있어서 이것을 누르면 녹색 LED 등이 켜지는 것입니다. 다만 사용자가 누르기 '1초 전에' LED의 불이 들어오는 것이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이 기계를 처음 사용할 때에는 그냥 그런 기계구나 생각하지만 점점 기계의 규칙을 어기고 싶은 욕망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수를 쓰더라도 누르기 전 불이 들어오는 규칙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단편소설은 3페이지 안 되는 5쪽의 작품입니다. 소설 안에서 매우 단순한 기능을 가진 이 '예측기'는 인간에게 던지는 파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단순한 기계가 자유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실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기계를 사용한 인간 중 3분의 1은 무기력증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내가 결정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죠. 테드 창은 이 소설의 말미에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그 누구도 예측기가 당신에게 끼칠 영향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굴복할 것이고 누군가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 경고는 그 비율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일(환자를 설득하는 일)을 한 것일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3.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미래에 프리즘(PRISM, Plaga interworld signaling machanism)이라는 기계가 개발됩니다. 이 물건은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매우 작은(양자 수준)의 변화를 일으켜 그 현재 세계와 변화가 일어난 세계, 즉 평행 세계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았을, 그러나 자신과는 다른 세계를 보며 자신에게 조언을 받기도, 자신과 업무를 분담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살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떤 아주머니의 한 일화가 소개됩니다. 그녀는 공부를 잘하는 조카딸이 있습니다. 그 딸은 좋은 성적을 받아서 대학 원서를 접수하고 1 지망의 대학은 아니지만 3개의 대학에서 합격 소식을 듣게 돼서 매우 기쁩니다. 그러나 어느 날 프리즘을 통해서 다른 세계의 자신의 상황을 보게 됩니다. 그 세계에서 조카딸은 1 지망이었던 바사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현실에서 아주머니는 좌절하게 됩니다. 자신은 다른 세계의 자신보다 조카딸에게 더 많은 도움을 못주었다는 것과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자책하게 됩니다. 

 그 아주머니를 본 다른 사람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아주머니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이죠. 조카딸은 공부를 잘하니 다른 세계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을 것이고 좋은 점수를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었으나 합격을 시키는 입시 담당자의 선택에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작용했다는 것이죠. 그것이 날씨가 될 수도 있고, 합격시키기 전 담당자가 겪었던 불행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소설의 말미까지 가면 평행세계를 지켜볼 수 있는 인간의 존재가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까지 나아가지만 위에 적었던 한 사례만으로도 저는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형성된 성격과 선택,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 속에서 내가 스스로 성취할 수 있었던 결과물과 무작위 변수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결과물을 비교할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내가 실패를 경험했을 때 이런 사실이 내게 위로가 될 것인가 좌절이 될 것인가 등등   




*자유의지 

이 세 가지 단편 소설은 모두 다른 관점에서 다른 시각으로 읽힐 수 있지만 

제가 공통적으로 느낀 개념은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의 '인간의 선택', 즉 자유의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전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비선형적 사고를 하는 외계인과 언어에 대해서 

다루기는 했지만 그 언어를 배워 인생의 전반적 타임라인을 깨닫게 된 한 언어학자가 

자신의 미래를 알고도(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일찍 사망하는) 같은 선택을 하는 인간의 고뇌 또는 슬픔이 나오죠.


특히나 이번에 소개해드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의 소설 『타나토 노트』의 내용과

일부분 겹치는 내용도 존재합니다.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서 

자유의지가 없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함이 인간의 사고 체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매우 짧지만 굉장히 임팩트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친구들 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심도 깊게 고민하기 위해서는 

여러 종교와 철학 등 인문학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하드 한 SF소설도 

답을 줄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될 수도 있다고 책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제가 소개한 이야기는 일부분에 불과하고 다른 이야기도 굉장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사서 혹은 빌려서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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