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AI와 기술이 보편화된 세상의 일상 (1)

by Adam Choi

아침 공기는 차분했다. 창문을 열자 도시의 소음이 희미하게 흘러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 속에는 자동차 경적이나 출근길 발걸음 같은 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는 정해진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했다. 가벼운 운동, 간단한 아침, 짧은 독서. 책은 늘 달랐다.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동을 하고, 누군가는 더 많은 도파민을 위해 VR에서 다른 현실을 살아갔지만 나는 ‘사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학적 설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 언제나 마음을 잡아끌렸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 그 질문들은 현실 속 어디에도 이어지지 못했다.


기본소득은 생활에 충분했다. 월세는 자동으로 빠져나가고, 식료품은 거의 무료나 다름없었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사람은 단순히 생존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법이니까.


집 안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했다. 오래전 2세기도 더 전, 독일에서 유행했던 바우하우스 양식을 본떠 지어진 건물이라, 장식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흰 벽, 네모난 창, 필요한 만큼의 가구. 그만큼 생활은 정돈되어 있었지만, 때때로 그 단조로움이 마음에 여백을 더 남기는 듯했다.


나는 책장을 열고 아무 표지가 없는 소설책 한 권을 꺼냈다. 작가는 필명으로 적혀있어 사람이 쓴 작품인지 AI 가 쓴 작품인지는 구별되지 않았지만 그저 제목과 표지, 종이의 질감이 좋아 구매했던 책이었던 것 같다. 그 옆에는 두껍고 누가 봐도 진지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사회과학 서적이 꽂혀 있었다. 읽을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편함이 나를 다시 그 책 앞으로 불러들였다. 두 권을 가방에 넣으면서, 오늘 하루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현관 앞에 놓인 AR 글래스를 집어 들었다. 얇은 프레임이 콧등 위에 닿자, 시야의 가장자리에 일정표와 알림창이 은은하게 떠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카페였다. 창밖으로 녹음이 보이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 커피 맛은 특별할 것 없지만, 그럼에도 이 답답한 공간보다는 나으리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부드러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걷는 동안에도 AR 창이 흘러가듯 정보를 띄웠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은 눈앞의 화면보다, 발밑의 그림자와 주변의 나무가 더 확실한 현실 같았다.

나는 가방 끈을 고쳐 매고, 천천히 카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는 평일 오전이었지만 사람이 적진 않았다.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과 뒤에서 메뉴를 정독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앉아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책을 읽거나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자리 옆에 난 큰 창 밖으로는 가을빛이 묻은 나무들이 천천히 흔들렸다.


나는 가방에서 소설책을 꺼내 펼쳤다. 태어날 때부터 태블릿에 익숙해진 세대이지만 그래도 이 까끌거리고 손을 짚을때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나는 종이의 질감이 마음에는 더 와닿았다. 책은 중간까지 봤지만 역시나 사람이 쓴 소설인지는 아직 구분하지 못했다. 모르는 단어, 이제는 사어가 되어버린 개념이 나올 때면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문장 옆에 작은 표식이 생겼다. 주석처럼, 필요한 배경 지식이 투명하게 덧붙여졌다. 역사적 맥락, 비슷한 사례를 다룬 다른 책, 혹은 관련된 인물의 사진. 설명은 간단했고, 요약은 짧았다.


책장을 넘기다 막히는 대목이 있으면, 팬을 들고 짧은 문장을 적었다. ‘인격의 분산’, ‘로봇의 자유’, ‘시장의 균형’ 같은 단어가 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생각이 기록되는 순간, 안경 가장자리에 작은 창이 열렸다. 유사한 논문들의 핵심 구절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몇 문장은 내 메모에 자연스럽게 덧붙여졌다.


머리가 무겁게 느껴지는 부분은 따로 표시해 두었다. 그러면 책 위에 작은 손가락 모양의 표식이 나타났다.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남겨둔 신호였다. 호흡할 때에 의식적으로 공기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같이 생각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를 조망해보면 기술은 조용히 내 곁을 따라왔다. 그것은 글을 읽고 생각하는 내 몸짓을 조금 더 매끄럽게 연결해 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치 연필이나 책갈피처럼, 필요하면 쓰이고 필요 없으면 사라지는 도구였다.


나는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맛은 평범했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문장은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였다. 창밖의 나무와, 책 속의 문장과, 손끝에 남은 메모가 겹쳐졌다. 오늘 하루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활자를 따라가던 눈길이 잠시 멈췄다. 문장은 여전히 눈앞에서 흘러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그 문장을 붙잡지 못했다. 마치 잉크가 번져 종이 위에서 흐려지듯, 생각은 산만하게 흩어졌다.


커피잔을 들어 올리고, 천천히 내려놓았다. 동작은 여전히 규칙적이었고, 주변의 공기는 고요했다. 창밖의 나무는 바람에 흔들렸고, 카페 안의 소음은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그 평화가 나를 답답하게 만들 때가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가슴 언저리에 남아 있는 듯했고, 손끝이 미묘하게 무거워졌다. 행동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만 작은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책에 집중하려 해도 활자들이 어딘가 멀리 있는 것처럼 흐릿해졌다. 생각은 단순히 문장의 의미를 따라가지 않고, 더 넓고 막연한 곳으로 흘러갔다.


“이런 하루들이 쌓이면, 나는 어디에 도달하게 될까?”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었다. 연인과 함께할 때는 더욱 그랬다. 누군가와 웃고 떠드는 동안에는 이런 공허함을 의식할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혼자 앉아 있을 때, 혹은 이렇게 책을 읽을 때, 이유 모를 답답함이 틈새처럼 스며들었다.


그 감정은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길어야 30분 남짓, 일주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라지고 나면 오히려 더 묘한 자국을 남겼다. 마치 손끝에 살짝 스친 유리 조각처럼, 보이지 않지만 은근히 아픈 잔상. 나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눈은 문장을 따라가고, 손끝은 펜을 움직였다. 행동은 어김없이 같은 궤도를 돌았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방금 스쳐간 감정이 얇은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가볍게 울리는 듯한 기분. 그런 때면 나는 늘 음악을 찾았다.

AR 글래스를 가볍게 건드리자, 익숙한 플레이리스트가 떠올랐다. 장르는 특별히 정하지 않았다. 그날의 기분과 맥박을 읽어 AI가 선곡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첫 곡은 잔잔한 피아노였다. 선율은 매끄럽고 균형 잡혀 있었다. 마치 한 방울의 물도 흐트러지지 않은 호수처럼. 나는 불편함 없이 음악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곧 이어진 곡에서 마음이 걸렸다. 화음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그 안에서 어쩐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국’ 같은 게 느껴졌다. 아주 미묘한 어긋남, 혹은 기계가 짜 맞춘 듯한 지나친 정돈감. 음악은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는 너무나 인위적인 그 완벽함에,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직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곡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무심코 오래된 플레이리스트를 열었다. 그곳에는 누군가 연주한 실제 라이브 음원이 남아 있었다. 지워지지 않은 실수와 호흡, 박자가 흔들리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거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출근길의 분주함 대신, 산책길의 여유가 자리 잡은 풍경이었다. 반려견과 함께 나와 있는 사람들,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부부, 유모차를 밀며 햇볕을 즐기는 부모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길가의 나무들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건물 사이사이에 심어진 풀과 꽃들이 도심의 공기를 바꿔 놓았다. 자동차 대신 자율주행 셔틀이 느긋하게 지나가고, 사람들은 그 옆에서 서두름 없이 길을 건넜다. 모든 것이 과하게 조용하지도, 과하게 시끄럽지도 않았다. 그냥 적당한 호흡으로 흐르고 있었다.


카페 안 풍경도 비슷했다. 어떤 이는 태블릿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어떤 이는 글자를 두드리며 작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옆자리에서는 친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웃음소리는 창밖의 풍경과 어색하지 않게 섞여 들려왔다.


나는 음악을 멈추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하루는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라지만, 그 빈자리를 이렇게 다양한 풍경들이 채워 나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음악과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책 위로 시선을 돌렸다. 활자들은 여전히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손끝은 다시 종이 위를 따라갔다.


창밖의 풍경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나의 하루는 다시 글자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생각은 문장을 따라 조금씩 정리되었고, 가끔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냈다. 나는 다시 책장에 몸을 기댄 채, 책의 무게와 단어의 울림에 천천히 몰입했다.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서 다시 활자를 붙잡았다.

오늘 하루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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