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에 플레이리스트를 맡고 있던 직원이
결혼을 하게 되어 신혼여행으로 2주간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결혼식에서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지만,
앞으로 2주간 그의 빈자리가 더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것 같은 하루다.
이유는 회사에서 흐르는 음악 때문이다.
주변에 음악 취향이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안맞는 사람도 많다.
예전 20대때 한 알바 중에서 음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한 사례가 한 가지 있는데,
그때는 매장에서 8~10시간 내내 힙합 음악만, 그것도 굉장히 매니악해서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한국인 래퍼의 음악만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차라리 외국어 가사라서 가사가 들리지 않거나 아예 시끄러운 록 음악이었으면 괜찮았겠지만
쉴 새 없는 비트와 취향에 맞지 않는 빠른 한국어 가사에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오늘은 힙합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한국의 전형적인 발라드, 특히나 2000년대와 2010년대에 유행했던
조금은 오래된 발라드에 대한 이야기다.
내 주변에도 특히나 00 ~ 10년대 발라드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긴 시간동안 나왔던 모든 발라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마치 예전에 나왔던 한국의 대부분의 소설들처럼
어떤 그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고유 혹은 기본적인 슬픔이 노래에 깃들어 있다.
그 노래들을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정말 쉴새없이, 일하는 내내 흘러나오다 보면
일단 기분 자체가 많이 다운되고, 가끔씩은 일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듣기 싫어질 타이밍이 찾아온다.
회사 특성상 잡담도 많고 서로 대화도 많은 환경이라 혼자서 이어폰을 꼽기도 애매하고
또 먼 자리에 위치한 음악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걸 나 혼자 변경을 요청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다.
AI 음악처럼 어느 정도 불호가 공감되는 노래라면 자리에 일어나서 바꿔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지만 회사사람 중 누군가 좋아해서 틀어놓은 이 발라드 플레이리스트를
아무런 이유없이 변경하는 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친구를 앞에 두고
취소 버튼을 누르는 것 만큼이나 용기가 필요하고 또 해서는 안 될 짓으로 느껴진다.
사실 음악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어떤 매체 혹은 콘텐츠든
한이 서려있는, 슬픔이 베이스가 된 모든 것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호가 있다.
어느 정도 이어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공포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사회적 혐오가 아닌) 물리적으로 혐오를 일으키는(disgust) 영화나 드라마도 싫어한다.
이유는 크게 생각해보지는 않았고 또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이유 혹은 설명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건 몇 가지가 있다.
1. 한, 혹은 슬픔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개인적인 생각
공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이라면 동정 혹은 연민이라는 감정을
소설을 통해서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는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발라드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기본적으로 우울감이며
인간극장이나 러브 인 아시아, 불우이웃 돕기 등의 광고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일반 사람으로 하여금 해당 상황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아주 작을지라도 그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참여문학은 그 시대에 느꼈을, 그 시대의 세대가 공감하는 고통을
간접적으로나마 글을 통해서 독자가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비가 오는 날씨나 흐린 날씨가 센치한 감성을 느끼거나
어떤 상황에서는 위로로 다가오는 날도 있겠지만 내 스스로 느끼기에는
역시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고 화창한 날의 날씨가 선택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굳이 내 눈과 감각을 내 선택으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로 만들고 싶지 않다.
2. 극적인(dramatic) 서사 혹은 감정
한이 서려있는 소설 혹은 발라드는 결국 비극이나 드라마와 연결된다.
우리는 보통 '극적이다'라고 표현할 때는 감정의 높낮이가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저차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슬프거나, 불행하거나, 비참한 것을 소재로 한 비극은
그 자체로는 누군가는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 소재라고 설명하지만,
나는 마치 길게 이어지는, 사이다 없는 고구마 서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딴 이야기지만, 유명한 게임 '문명 6'에서는
시대의 발전 상황에 따라서 해당 시대의 문명을 황금기/정상기/암흑기로 평가한다.
그리고 암흑기가 찾아온 뒤 황금기가 찾아오면 다음 문명 시기를
일반적인 황금기가 아닌 '영웅기'라고 표현하며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한번 찾아올 영웅기를 위해서 일부러 암흑기를 유도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저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발전해 매 시기마다 황금기가 찾아오기만을
평온하게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 상황에서 Background music으로
'재즈'장르를 선호하고, 특히나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재즈를 선호한다.
빌 에반스, 듀크 조던 트리오, 스탄 게츠의 음악들을 좋아하고
조 히사이시, 류이치 사카모토 등 뉴에이지 음악도 가끔씩 듣는다.
소설 중에서는 무리카미 하루키나 폴 오스터, 서머싯 몸,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등의 소설,
그리고 sf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도 아마 감정 그 자체보다는 플롯, 이야기의 플롯과
세계관, 설정이나 아이디어가 주가 된 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