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여느 평범한 날처럼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잠을 깨우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처럼 들을 영상을 찾다가,
가끔 챙겨보는 ‘부읽남’ 채널에 새 영상이 올라온 걸 보고 재생한 뒤 핸드폰을 닫고 길을 걸었다.
영상에서는 채널 주인장과 초대된 전문가가 10.15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문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래와 같은 문장이 흐르자마자 갑자기 듣기 싫어졌다.
“(전략)… 토지거래허가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투기과열지구는 정부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후략)”
듣는 순간 명확한 판단이 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과 함께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이어지는 말들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위화감의 원인은 아마도
‘토지거래허가제는 그렇다 치더라도’라는 그 짧은 문장에서 비롯된 듯했다.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최근 정책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얼마나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하는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요한 논점을 자신의 주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슬쩍 축소해 버리는 태도가
내게는 꽤 거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이처럼 논점을 흐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만 강조하거나,
중요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일련의 말하기 방식은
특정한 단일 용어로 완벽히 지칭되긴 어렵지만
담론분석(Discourse Analysis)에서는
‘프레임의 중심을 바꾸는 말하기 기술’로 묶어 설명되곤 한다(라고 gpt가 설명을 도와주었다).
전문가의 말을 들을 때, 내가 해당 분야에 전혀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가 하는 말이 대부분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들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내 생각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동산처럼 이미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거나,
내가 어느 정도 사전 이해와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말이 이전처럼 매끄럽게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적 위화감이 들고 괜히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순간도 생긴다.
그런 경우를 천천히 되짚어보면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중 하나가 거슬렸던 때가 많다.
1. 논점을 흐리거나 축소하거나
2. 전제를 ‘당연한 사실’처럼 문장 속에 밀어 넣거나
3. 중간 단계 없이 결론으로 건너뛰거나
1) 논점 축소
연인 혹은 일상관계에서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가스라이팅'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논점 축소하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 같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여 발생한 말싸움은 잘못을 지적한 상대의 감정과 말투,
어휘에 대한 지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며
본인이 지적당한 논점은 어느새 아무것도 아닌 듯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며,
내가 위에서 언급한 본인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서 정작 중요한 논점 혹은 근거를
마치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축소시키는 것이다.
논점을 축소시키는 과정에서는 바로 다음으로 이어진다.
2) 전제 밀어넣기
논점을 축소하거나 흐리는 과정에서 해당 논점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전제를
사실에 대한 검증 혹은 단계적 검증 없이 너무 당연한 것처럼 문장 속에 묻어내는 것이다.
이건 만약 글로 표현된 책이 아니라면 마치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이야기해서
듣는 사람조차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곤 한다.
개인적인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이에 해당하며, 서로 동의하지 않은 의견에 대해 마치 상호 간 동의가 마무리된 것처럼
포장하고 넘어가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즉, 서로가 사실로 합의하지 않은 내용 혹은 전제를
마치 모두가 동의한 사실이라고 강요함과 동시에 논박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3) 건너뛰기
마지막은 아예 전제 혹은 논리적 단계를 생략하고 점프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흔히 토스 종토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댓글에서 주가 하락 or 상승(기원)의 원인으로 어떤 사건을 인용하거나
기사 내용을 가져오곤 하는데 일반 사람이 볼 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특정 주식 혹은 경제에 관심을 가지거나 전문가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터무니없거나 이상한 말로 느껴지는 것과 같다.
어떤 때에는 너무나 많이 건너뛰어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나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정치인 혹은 공인의 발언, 그리고 해당 발언을 한 기사가
이슈가 되어 기사로 나오면 그 댓글로 적힌 글들이 종종 그러한 것 같다.
사실은 내가 느끼기에는 정치인의 발언뿐만 아니라 그냥 최근의 이슈가 된 모든 사건과 관련된
커뮤니티의 글들과 기사의 전문들 중에서도 글이 잘 안 읽히거나 위화감을 느낀다면
높은 확률로 논리적 비약이 심한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해당 기사는 최근 환율이 1470원 가까이 상승하며 환율 상승의 원인을 기사가
인용을 통해 짚어 내용을 적은 것인데, 물론 앞뒤 맥락은 있겠지만 해당 단락만 봐서는
이게 정말 기자가 쓴 글이 맞는지 매우 큰 의구심이 드는 단락이 아닐 수 없다.
해당 단락에서는 원화 가치를 끌어내린 주 요인은 외국인의 순매도세라고 짚었다.
그리고는 순매도세애 대한 통계치를 언급하고 바로 다음 어떠한 설명도 없이
다른 환율 상승의 요인을 나열하는 것으로 단락을 마무리했다.
그럼 일단 나는 '왜 외국인의 순매도세'가 환율을 끌어내린 원인인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순매도세가 환율을 끌어내리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기자는 그런 것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런 기사와 글은 정말 굳이 눈을 뒤집어가며 찾아보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결국 제목으로 돌아오자면,
전문가의 발언이나 토론을 듣는 과정에서 팔짱을 끼고 조금 찌푸린 표정으로
조용히 듣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거의 확신한다.
그 사람은 아마 화자의 말속에서 어딘가 논리적 비약, 전제 삽입,
논점 축소와 같은 구조적 위화감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는 긍정·부정 같은 감정과도, 낙관·비관 같은 성향과도 관계가 없다.
단지 그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많이 공부하고,
사전지식이 쌓인 상태에서 위화감을 더 정확하게 느끼는 것뿐이다.
그 위화감은 때로는 숨겨진 의도·이익·위선·허구를 미리 알아채게 해 주어
삶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세상을 조금 더 냉소적으로 바라보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일상에서 말할 때마다 전제, 통계, 논리적 단계 등을 완벽히 챙길 수는 없다.
그렇게 살기엔 너무 불편하고, 또 완벽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을 느낀다면,
그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말의 구조에 숨겨진 ‘비약’을
남들보다 빨리 감지해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