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주변에는 아주 우연하게도 코끼리, 사자, 얼룩말과 원숭이 등
일상에서 마주하기 힘든 동물들을 산책하며 구경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집 근처에 어린이 대공원이 있다)
그래서 우스개소리로 이른 아침 새벽에 조깅을 하면서 얼룩말과 인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동네라고 친구들 혹은 직장 동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저번주 주말에도 너무나도 좋은 가을 날씨에 여자친구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을 산책하는데
바로 1시간 전까지 집에서 아침을 먹고 카페를 가는 등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내 눈앞에 커다란 코끼리와 죽은 듯 자고있는 암사자를 보고 있자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일상과 비일상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별한 경험을 소비를 통해 달성한다.
일상에서는 마주할 수 없었던 건축물 혹은 자연 경관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거나,
평소에는 먹어볼 생각조차 없었던 미식을 경험하는 등 완전히 일상에서 벗어난 경험을
짧지 않는 시간 한정적으로 느끼기에 즐거움과 행복감, 그리고 여행이 끝난뒤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나 바로 집 옆에 위치한, 동물원에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산책하면서 바라보는 이 경험은... 여행도 일상도 아닌 모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혹은 장편소설을 보면
매우 뜬금없이 쥐나 양, 기린, 팽귄, 까마귀 등 동물이 나온다.
심지어 동물들은 너무나도 당연한듯이 사람처럼 옷을 입고 사람 말을 하며,
주인공 혹은 주변의 인물들을 이러한 말하는 동물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대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와 고양이 등 일상에서 마주하기 쉬운 동물보다,
기린, 팽귄, 양 등 일상에서 마주하기 힘든 동물이 책에 등장하고,
또 이러한 동물들이 주변에 돌아다니며 말을 하는게 너무나 당연하게 묘사하는 것은
일상과 비일상의 구분 혹은 경계를 모호하게, 흐뜨리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동물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도심에서 우연히 마주하는 특별하게 생긴 건축물 혹은 팝업 공간,
계획하지 않게 지나가다 본 지역 축제 혹은 불꽃놀이들은 일상의 패턴을 깨뜨리고
찰나의 시간동안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될 경험으로, 즉, 비일상으로 인식을 변화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성수동이라는 공간이 왜 다른 지역과 달리 여전히 트렌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지,
여러 커플들이 주말 혹은 평일 저녁에 성수동을 찾게 되는지 이해되기도 한다.
최근 지어진 젠틀몬스터의 사옥, 지어지다 만 것 같은 탬버린즈 매장의 모습,
바로 그 옆에 궁전처럼 지어진 디올의 건물 등 온갖 것들이 섞여있는 모습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코끼리 혹은 사자처럼 일상에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나야 지금 살고있는 지역이 우연히도 광진구와 성동구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일상의 경험이 일상에 때때로 경계를 허물며 찾아오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보통 여행을 통해, 그리고 아주 가깝게는 영화관을 통해 특별함을 경험했었다.
그러나 최근 영화관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그 지위를 아주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그 지위는 퇴근하면, 심지어는 퇴근하면서 모바일을 통해 언제든 볼 수 있는
OTT로 흡수되면서 이제는 일상의 경험으로 흡수되었다.
그래서 문득 공원과 산책로, 한강, 심지어는 골목 등 장소에 관계없이 볼 수 있는
'러닝' 혹은 '러닝 크루'가 건강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뻗었다.
이 생각을 확장하면 노인분들이 평범한 오후에 공항을 가는 것도,
이제는 금지되었지만 탑골공원에 가 장기를 두는 것들도,
돈이 있는 노년층이 골프에 몰입하는 것들도 모두 연장선으로 이해됐다.
이 글의 결론을 깔끔하게 짓기는 어렵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내가 왜 지금까지
취미를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또 기껏 찾은 새로운 활동에 쉽게 질려왔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
비일상을 찾아 떠났지만 그 경험이 어느새 패턴화되어 일상에 흡수되기 시작하면,
특별함의 역치는 점점 높아지고, 만족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해진다.
결국 그 과정에서 취미는 ‘즐거운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로 바뀌어버리고,
그때부터 비일상은 다시 일상의 굴레 안으로 회귀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확장적인 대안일지도 모른다.
책은 장소나 비용의 제약 없이 나를 매번 다른 세계로 데려가 주고,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일상의 리듬 속에서도 비일상을 생성한다.
‘웹소설’이나 ‘웹툰’처럼 즉각적인 자극을 주는 형태도 결국 그 비일상의 한 변주이며,
다만 깊이보다 속도를 택했기에 더 쉽게 몰입하고, 더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나는 다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철학서를 고르고,
그 난해한 문장들 속에서 고상함과 특별함을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