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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Apr 19. 2020

무심히 달력 한 장을 쳐다봤다.

#에세이 16

무심히 쳐다본 4월의 달력엔 꽤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그것은 납품처와의 미팅 장소와 시간, 가족들의 모임과 약속 그리고 친구들과의 만남 등이 작게 표시되었다. 따로 표시되지 않은 날짜에도 자잘한 관계와 관계는 존재했다. 달력의 가장 밑에는 근처 은행에서 배부된 듯 '예/적금은 OO은행에서."라고 적혀있었다. 달력 속에서 4월 중순이 넘어가는 걸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으슬으슬한 날씨가 얄미워도 코로나 19가 더 얄미워 봐주고 싶다. 그렇게 달력을 유심히 보던 중 날짜 위에 사적으로 표시된 흔적 뒤로 회색 글씨의 작은 글씨가 보였다. 흰 바탕에 회색의 글씨라니 도대체 누가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곳엔 4/19 혁명 기념일이라고 적혀있었다.


4/19 혁명 기념일. 최근 KBS2 채널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봤던 이야기였다. '피의 화요일'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장기집권 꿈꾼 이승만 정권의 행태에 대한 초,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 교수들까지 아우르는 전국적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이라는 내용이었다.


조금 깊게 이야기해보면 독재를 꾀하던 이승만과 이기붕은 그 해 5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같잖은 근거를 대며 3월로 조기 실시한다. 당연히 야당과 언론의 반대 여론은 무시당한다. 그렇게 실시한 선거는 완벽한 부정선거였다. 올해 '4월 15일' 우리가 치렀던 민주주의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승만을 뽑으면 고무신과 생필품을 준다는 식과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대리투표, 게다가 정치깡패를 동원한 투표 방해 등의 수법이 동원되었다. 마지막 화룡정점은 꽤 많은 투표지에 이승만과 이기붕을 기표하여 미리 투표함에 넣어두었다는 것인데, 조작으로 인한 높은 득표율로 실제보다 낮게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의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제 막 민주주의라는 첫 발을 뗀 국민들이 전국적이며 조직적인 시위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시나 지나온 날짜보단 앞으로 올 날들이 더욱 궁금해서였는지, 달력의 숫자들을 따라 내려가 봤다. 내 눈이 멈춰 선 곳은 '4월 20일'이었고 밑에는 마찬가지인 회색으로'장애인의 날'이라 적혀있었다.


4월 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이라고도 기념되는 날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 정의해보면 20일은 '작은 차이'를 가진 이들을 위한 날만은 아닐 것이다. 장애가 있던, 없던 그런 작은 차이들은 생각할 필요 없는 우리 모두가 기념해야 하는 날인 것이다. 세상은 점점 차별의 벽을 허물고 있다는 여러 이야기들은 모르긴 몰라도 작은 차이가 있는 사람들의 눈엔 분명하게 아직 멀었다.


지금은 무한경쟁을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n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내 집, 인간관계)라고 정의된다. 해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사회는 이제 '소확행'이라는 단어로 행복의 크기마저 정의해 버렸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 행복은 더 깊고 클수록 좋은 것일 텐데 왜 이처럼 작아진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더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나에겐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어진 것이다. 요즘의 내가 이 정도로 느끼는데, 작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소확행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 마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종종 몸은 멀쩡해 보여도 정신에 작은 차이와는 다른 '진짜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 이상하게도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높을수록 두드러지는데, 이들에겐 일란성쌍둥이처럼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한 없이 강하다는 것이다. 차별과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처지에 공감을 하지 못한다.


장애인의 날엔 이런 사람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땅콩 한 줌에 비행기를 돌린다던지, 나이를 빼고서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 경비원에게 삿대질과 고성을 친다던지, 가뜩이나 바쁜 소방서에 전화해 자신을 소개한 고위 공직자 등 마음에 진짜 장애가 있는 사람들 말이다. 공감을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지 모르겠지만, 그나마도 안 했다고 하는 편이 났다. 못하면 그건 진짜 병이다.






이외에도 4월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지나온 것부터 나열해보면 지금에서라도 진상규명을 시작하는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과 향토 예비군의 날(3일), 이젠 꽤 익숙한 듯 공휴일에서 빠진 식목일(5일), 머나먼 이국땅에 세워져 독립운동을 지위하던 임시정부 수립일(11일), 우리의 일꾼을 뽑는 21대 국회의원 선거(15일), 4.19 혁명 기념일(19일), 장애인의 날(20일), 과학의 날(21일), 지구의 날(22일), 법의 날(25일), 충무(忠武)이라는 시호가 너무나도 작게 보이는 충무공 탄신일(28일) 마지막으로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부처님 오신 날(30일)을 끝으로 4월은 마무리될 것이다.


각기 다른 해를 지나왔을 그것들을 보면 감회가 새로웠다. 어릴 때 읽었던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위인들의 이야기나 주입식, 암기식을 위해서인지 몇 장에 읽기 쉽게 정리된 정규 교육 속의 많은 사건과 사고들은 절대 우리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라는 큰 흐름 속으로 흘러간 이 땅 위에 있던 사람들의 삶이었고 우리의 역사였다. 하얀 달력 속엔 수많은 이야기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었는데, 다음 달인 5월로 달력을 넘길 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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