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의 여자 Apr 26. 2020

여름의 우연

# 글 - 1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전기과를 졸업했다. 특성상 이과에 관련한 수업과 실습이 많았고 문과계열의 수업일수는 적었다. 대부분의 수업시간은 전기 이론과  전선을 피복하는 법을 배우거나, 땜질을 배웠다. 가끔씩 기술대회에서 입상하는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빠른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 날은 여름방학 하루 전이었고, 문학 선생님의 마지막 근무 날이었다. 친구들은 서로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연구 중이었다. 누군가는 어디에 간다거나, 무엇을 할 것이다 하며 떠들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절반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PC방에서 죽치고 있을 듯했다. 기억에 문학 선생님은 30대 후반의 남성분이셨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신다고 하였다. 이유는 몰랐고 간다고 하시니 가는 줄 알았다. 다행히 우리 반의 마지막 교시가 문학 수업이라 서로는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우리에게 더도 말고 딱 한 가지만 바란다고 하셨다.


“난 너희들이 다 커서 누군가를 만날 때, 잠깐이라도 서점에 들러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반 아이들 중 딱 한 사람만이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어땠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덤덤했다. 선생님과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방학이 시작되었다. 꽤 시간이 지나 여름의 습하고 더운 기운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나 역시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어딜 가거나 무얼 하진 않았다. 매일이라고 할 만큼 컴퓨터를 하기 위해 형의 방에 드러누워있었다. 형은 게임과 책을 좋아했다. 극과 극에 것들을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격도 극과 극이었다. 당시 형도 방학인지라 좋아하던 책은 뒤로하고 컴퓨터에 매달려있었다.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늦은 밤까지 두드리다 지쳐 쓰러질 때쯤 나에게 양보했는데, 바통을 건네받은 나 역시 신나게 두드렸다. 키보드와 마우스에게 우리 형제의 존재는 악몽 그 자체였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기던 방학의 막바지 여름밤, 형은 게임 속에 이벤트가 있다며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나는 내 차례라며 정당하게 주장하다 말아버렸다. 아마 형이 있는 사람은 내가 왜 그랬는지 알 것이다. 사춘기 형제들의 전쟁은 세계대전을 방불케 한다. 오늘은 포기해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형의 침대에 누웠을 때, 머리맡에 책 한 권이 있었다. 분홍색 바탕에 꽃이 피어있는 표지에는 남한산성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게 내 첫 독서는 시작되었다.


세상은 문 밖에 있다는 것과 달리 나에게 세상은 문 안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진학하며 내 독서는 김 훈을 지나 박경리, 황석영, 코맥 매카시, 조지 오웰, 주제 사라마구, 알랭 드 보통, 무라카미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으로 이어졌다. 여름의 우연은 내 작은 방에 세계의 작가들을 모여들게 했고 나는 그들이 말해주는 시대의 기쁨, 슬픔, 분노, 우울 그리고 삶과 인생의 이야기에 밤을 새우며 책의 즐거움을 배웠다.


이제 문학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누군가를 기다릴 때 여건이 되면 늘 서점에 간다. 가서 꼭 책을 읽거나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난 책의 기운을 느끼려 한다. 꽂혀있거나 펼쳐져 있는 책들의 무게를 느껴보고, 촉감을 느껴본다. 코를 들이밀곤 킁킁거리며 향기도 맡아본다. 내용이 무거우면 책도 무거웠고, 발전하는 표지의 촉감은 늘 새로웠다. 무겁든, 새롭든 책의 향기는 한결같이 편안하고 따뜻했다. 사방이 책으로 뒤덮여있는 서점은 고요함과 차분함이 팽팽하게 공존한다. 이 시대에도 서점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뜨거운 연대가 느껴진다. 그리고 어딘가의 서점에서 나처럼 책의 기운을 느끼고 계실 문학 선생님이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편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