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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Apr 24. 2020

편의

#에세이 18

내 방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편의점은 늘 불이 켜져 있다. 아침은 물론, 저녁과 새벽 그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 항상 불이 켜져 있다. 같은 라인에 있는 상가들은 공실이어서 불이 꺼져있거나 그날의 장사를 끝마친 뒤 퇴근하여 꺼져있었는데, 그 상가 라인의 유일한 편의점의 불빛들은 대체 언제 퇴근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아는 한 저 편의점의 불은 낮과 밤중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었다.

아침잠이 별로 없는 나는 주말 새벽녘을 산책하며 그 편의점을 들려 물 한 통을 사곤 한다. 매장 입구에 들어설 때 피곤에 절어있는 편의점 광고판과 현광등들을 보고 있노라면 노동은 인간만의 문제는 아닌 듯했고, 흐릿하게 점멸하는 형광등의 불빛만큼 새벽녘을 홀딱 보낸 주인의 눈빛도 흐릿해 보였다.

 
전국의 편의점 수는 대략 사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형 브랜드들의 대략적인 수만 사만 개이고 동네의 개인이 운영하는 편의점들의 수까지 포함하면 더 높아지는데, 편의점 수는 매년 더 증가할 것이라는 걸 어느 기사에서 보았다. 꽤 많은 수의 편의점들은 아르바이트를 두지 않고 가족들이 하루 24시간을 각자의 몫으로 나눠 운영한다고 한다.

종종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최저임금의 여파로 인해 어쩔 수 없다는 선택이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온 가족이 아침, 저녁, 새벽 그리고 또다시 아침으로 이어져 운영되는 편의점들의 속 사정을 들어보면 가족들의 인건비도 안 나오는 현실을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토로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바탕으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희한한 계약 방식에 있는 것으로 개인적인 추측을 해본다.

전국 대로변과 골목 곳곳에 위치한 사만 개의 꺼지지 않는 편의점 형광등과 그 안에 잠 못 드는 이들을 생각하면 사람 한 명, 바람 한 점 없는 새벽녘의 편의점은 대체 누구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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