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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May 05. 2020

광화문의 상징

#에세이 20

어느 날인가 육지와 섬을 이어주는 정기선에 탔던 기억이 있다. 노후된 듯 찢어지는 엔진 소리를 품은 3층 높이의 배 안에는 사람들과 차량이 가득 실려있었고 과자 봉지를 쥐어 잡은 아이들 주변으론 갈매기떼들이 모여들었다. 연인들은 서로에게 기대었고, 노부부들은 등을 마주 대고 앉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노부부들은 말이 없었다. 아이들의 손에서 던져지는 과자 부스러기들을 저공비행하는 갈매기떼들은 쉽게 낚아채어갔는데, 종종 윗놈이 잡다 놓친 것을 아랫놈이 잡았다. 아랫놈도 놓친 부스러기들은 밑으로 떨어졌다. 가벼움 탓인지 그것들은 바닷물 위에서 넘실 거렸다.  


넓고 검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 가끔 광화문 광장에 있는 동상의 주인이 떠오른다. 나는 김 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감명 깊게 읽었다. 대학교 시절이었고 늘 가방에 가지고 다녔는데, 작가 특유의 힘 있는 거친 필력과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은 서로 포개어져 등교하는 지하철에선 눈을 뗄 수 없었다. 책의 내용은 그가 백의종군을 하던 때를 기점으로 한다.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적들을 피해 국경의 끝으로 조정을 파천한 임금은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그를 경계했고 이윽고 죄를 물어 파직시켜 압송한다. 죄명은 허위 보고와 명령 불복종이었다.


압송 전 그는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당포와 한산도 그리고 안골포와 왜군의 전진기지인 부산포에서 연승한다. 조정은 나라를 버리고 국경으로 파천했고 밭과 들에는 찢어지고 베어진 백성들의 시신이 나뒹구는 상황에서 한 줌 밖에 안 되는 수군으론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해야 했고, 이길 수 있는 자리에서 싸워야만 했다. 그것으로 적들이 육지로 실어 나르는 보급을 끊어야 했다. 충원되는 병력을 죽여야 했고, 수륙 양진의 전략으로 치고 올라오는 왜선을 부숴야 했다. 작은 한 줌은 끊어야 할 것이 많았고, 죽여야 할 것이 많았다. 중앙에서의 지원과 보급은 없었다. 길어지는 전쟁 속에서도 굳건하게 재건된 수군의 수는 1만까지 불어났는데, 그는 병력을 스스로 입히고 먹여야 했다. 와중에 피로 물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온 피난민들까지 수용하여 그들의 터전도 책임져야 했다. 그에게 진다는 것은 자신이 수행하는 하나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닌, 곧 국가의 멸망이었다.


왜선과 판옥선이 넘실거리는 검은 바다를 보며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지 또, 온몸으로 짊어졌을 수많은 생명의 무게를 도대체 그는 어떻게 버텼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복원한 동상의 재질은 청동이라 한다. 가끔 새들은 그 위에 앉아 똥을 싸는데 쉽게 금속을 부식시키는 그것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주기적인 보수작업과 대청소로 나름 관리한다는 것을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다. 한편, 동상에는 꽤 많은 논란이 있다고도 했다. 갑주는 청나라 시대의 모양이며, 칼의 모양은 조선 칼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인데, 바로잡기엔 이미 광화문의 상징으로 되어있어 쉽지 않다는 기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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