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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의 여자 May 07. 2020

아들은 필요 없다.

에세이-21

나는 쌍둥이 형제의 막내이고, 위로는 큰형이 있다. 아들만 셋인 집인데, 태어날 때부터 셋이었고 지금도 셋이다. 내가 태어난 날을 어릴 때의 범위에 포함할 수 있다면 이것은 나에게 일어난 중대한 일이었다. 우리 집은 늘 복작거렸다. 형제들은 입으로 싸우고 그것이 모자라면 몸으로도 싸웠다. 그럴 때마다 쌍둥이와 나는 같은 편이었고 세 살 터울의 큰형은 늘 혼자였다. 참고로 쌍둥이는 위로 5분인데, 위로 5분이라는 것이 웃기지만 형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이제 다 커서 그때를 떠올려보면 삼국지와 비슷하다 생각한 적이 있다. 대륙 통일의 뜻으로 건국된 위나라와 오나라, 촉나라를 생각해보면 형제들의 형국과 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큰 포부를 가진 저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는 배 터지게 먹어야 느낄 수 있는 포만감과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적시에 입을 수 있는 의복의 독점을 놓고 싸웠다. 한창 자랄 때의  남성이 가지는 식탐은 상상을 초월하며, 사춘기의 예민함은 양말 한 켤레에도 옷장을 뒤집어 놨다. 이런 상황이니 각자는 치밀한 전략전술을 통해 서로를 기만하며, 물고 뜯고 지칠 때는 휴전을 하지만 영원한 평화는 없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전까진 말이다.


어쩌면 내 부모는 박복한 사람들일 것이다. 귀엽고 예쁜 딸이 부리는 재롱이나,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사랑스러운 것들의 경험은커녕 까무잡잡한 것 셋이 악과 떼를 써가며 가끔은 치고받고 구르기까지 하는 매일의 지리멸렬함에 마른세수를 했을 엄마의 모습은 눈에 훤하다. 그것들을 먹여 살려야 했을 아빠의 중압감이 어땠을지는 현재 미혼인 나로서는 더듬어 볼 수 없다.


내가 하는 것이 딸의 역할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난 딸 역할을 한다. 어릴 때의 죗값과 자식 한 놈쯤은 서글서글한 맛이 있어야 된다는 감정이 포개어져 난 내 부모와 붙어 다닌다. 주말엔 산책과 등산을 한다.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사과, 복숭아, 참외, 수박 같은 제철 과일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가끔 대중목욕탕에서 푹 지지고 나온 뒤 생과일주스를 마시기도 한다. 내가 알려주는 요즘의 것들에 신기해했는데, 휴대폰의 숨겨진 기능이나 새벽 배송과 무인 주문기 같은 것들을 알려주면 금세 써먹었다.


여러 매체들의 예능 따위나 주변의 결혼에 성공한 형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를 낳으려면 딸이 최고라고 한다. 아들 사랑은 예전 쌍팔년도의 이야기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에 아들은 너무 크다고 한다. 아들은 키울 때 천방지축이고 옷 입히는 맛도 안 난다고 한다. 거기다가 애교도 없이 무뚝뚝한 것이 먹기는 또 며칠 굶은 사람처럼 먹어 선호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딸은 웃을 때, 뒤집기를 할 때, 옹알이를 할 때 등 크면서  하는 짓들이 모두 예쁘다고 한다. 형들은 그것이 웃으면 그 웃음을 따라 절로 함박웃음이 나고, 언젠가 다 커서 성인이 된 후 지을 같은 웃음을 생각하면 마음속엔 깊은 미소가 번진다는 것인데, 아들은 없지만 계획엔 없고 필요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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