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자, 손녀의 관점으로
할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은 안방에 걸린 커다란 액자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위암으로 한참을 고생하시다가 눈을 감으셨는데,
너무 시간이 흘러버린 탓인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흐릿하게 기억나는 건, 엄마의 손을 잡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시는 과수원에
방문했었는데,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온 일뿐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면서 우리 가족은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를 왔습니다. 엄마의 불만에도
우리 아빠가 너무 효자인 탓인지 결국 이사를 갔습니다.
매주 일요일에는 할머니가 계시는 과수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원래는 말 그대로 과수원이었지만,
꽤 오래 하던 사과농사를 접고 모두 밭으로 개간해서
과수원이라고 부르긴 참 애매합니다.
그래도 저는 친할머니가 계신 곳을 과수원이라 부릅니다.
할머니는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밭을 돌보십니다. 방울토마토, 가지, 콩, 오이, 깻잎 등
밭에서 키워보지 않은 것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입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줄곧
과수원에서 홀로 지내셨습니다.
이런 할머니의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아빠가 시골로 이사하셨죠.
친할머니가 외롭다는 사실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뼈저리게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사이가
꽤 돈독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묘사하는 할아버지를 듣다 보면
그리 할머니께 잘해드렸다는 느낌은 아니더군요.
여기에는 정말 드라마급인 내부사정이 숨겨져 있지만,
아빠나 할머니 모두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운을 떼지 않으시기에 저도 이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게 됩니다.
어쨌든 할머니께 할아버지가 보고 싶냐고 물어보면
할머니는 한참을 대답하시지 않다가 혀만 딱 차시더군요.
할아버지라는 단어만 넣으면 할머니의 눈은 금세 슬퍼집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를 함부로 물어볼 수도,
함부로 예측해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빠한테 물어봐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게 끝이네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이혼을 목도하고 난 이후에
친할머니와 친할머니의 사별에 관해 생각하는 날이
부쩍 늘었습니다.
할머니의 과수원에 갈 때마다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그냥 저도 슬픈 눈으로 할아버지의 끝을 생각하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화장으로 장례를 마쳤고, 할머니와 아빠는
과수원의 뒷산으로 올라가 유골을 모두 바람에 날려 보냈답니다.
할머니와 아빠가 당시에 어떤 생각을 지녔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너무 아파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