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미술관을 나오면서

프랑스 여행수필 5 - 미술관이 된 기차역, Musée d'Orsay

by 어진

사라져가는 것들은 아름답고, 누구나 슬플 때면 노을 한줌씩을 사랑하게 된다.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을 이렇게 조용히 보냈다. 죽음처럼 홀연히 사라질 유한한 날. 그날 하늘은 아름다웠다.


지금은 사라진 기차역. 미술관이 되어버린 거대한 폐역에서 누군가가 남긴 슬픔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속에 그런 슬픔이 있는가 생각해보았다. 노을 같은 슬픔이 있는가, 하는 물음들을 문득 떠올려보았다.

그의 그림처럼 변하지 않는 그림을 내 마음속에 그리고 싶을 뿐이었다.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른 화가는 죽기 전에 자화상을 그렸다. 자화상을 그린다는 건 자기를 그토록 뜨겁게 사랑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자신이 못나고 슬퍼 보여도 그리고 자신이 노을처럼 언젠간 소멸할 존재라는 걸 알고 있다 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자화상을 그릴 수가 없다. 노을이 아름답지만 결국 사라지는 것처럼 그도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고 그래서 그 아름다운 노을을, 자기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에펠탑이 있고 그 옆에 초승달 하나가 떠 있다. 언젠가는 사라질 초승달을 바라보며, 어린 나도 초승달처럼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가 자랄수록 쉽지가 않음에 고개를 숙였다. 그의 그림처럼 변하지 않는 그림을 내 마음속에 그리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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