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의 날개

꿈의 해석 1 - 학교는 폭력으로부터 날아오를 수 있을까

by 어진

* 꿈의 기록입니다.

고등학생이 된다. 남색 교복을 입는다. 어느 고등학교. D 고등학교와 많이 비슷하지만 더 낡고 어두컴컴한 분위기. 복도 벽에는 시멘트의 균열이 가고 석면 가루가 후두두 떨어진다. 청색 형광등은 여기저기 깨지고 듬성듬성 고장 나 명멸한다. 복도에서 계단으로 가는 통로는 철문이 아니라 검은색 쇠창살이 가른다. 복도 쪽으로 난 교실의 창문도 페인트칠이 벗겨진 검은 쇠창살, 운동장 쪽으로 난 창문도 검은 쇠창살이다. 유리로 된 창도 몇몇 존재하고, 아예 창틀이 없이 뻥 뚫린 창도 존재한다.

모든 복도와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 학교에 사람이 아예 없는 시간대인 듯하다. 주말일까. 방학일까. 시간대는 해가 저무는 오후 다섯 시. 아무도 없는 교실(학급 교실이거나, 방과 후 수업을 하는 창조교실이다). 칠판과 교탁과 모니터가 앞에 펼치고 창조교실의 자로 긴 나무책상과 의자가 네 줄 정도 정렬된다. 주차장 쪽으로 난 왼쪽 창문에는 커튼이 모두 쳐지고, 커튼을 투영한 오후 다섯 시의 햇빛이 교실 안으로 스며든다. 어두운 노란빛과 탁한 주황빛이 책상과 모니터와 얼굴을 적신다.


나는 중간 줄 책상에 앉아 존재하고 내 앞으로 의자를 앞으로 향한 채 몸만 뒤로 앉은 다른 남자가 앉아 존재한다. 티브이에서 일본 순사를 자주 연기하는, 젊고 악랄하게 생긴 반삭 머리 검은 피부의 남자. 키가 작고 얼굴도 작고 눈도 작아 날카로운 인상이다. 교사의 역할을 하는 조교이다. 나를 통제하는 일본 순사. 남자는 내 옆으로 와서 날카롭고 투명한 삼십 센티 자로 내 볼을 때리기 시작한다. 날카롭고 따가운 폭력. 투명한 자가 깨지면서 유리파편이 튄다. 볼은 점점 빨개지고 수없이 미세한 흠집이 피부를 갈라놓는다.

쓰라림과 수치심에 참다못해 벌떡 일어난다. 사정없이 그 남자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제자가 하늘같이 높은 스승을 팬다. 어떻게 팬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검은 쇠사슬로 결박하고, 쇠사슬로 직접 얼굴을 가격한 기억만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는다. 남자의 두피에서 피가 꿀처럼 솟아오른다. 얼굴에는 온통 빨간 피와 파란 멍이 가득하다. 남자가 부르짖는다.


나는 도망한다. 교실 문을 열자 계단 아래에서 피 묻은 학생들이 좀비처럼 올라온다. 복도 저 멀리서 또 다른 학생들이 관절이 꺾인 채로 피를 흘리며 몰려온다. 스승을 두들겨 팬 냄새를 맡고 나의 사지를 찢어 갈기러 온 것이다. 나는 다른 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바로 옆 교무실로 도피한다. 교무실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교무실의 빛은 다 꺼진 채로 말소된다. 모든 것은 낡고 부스러진다. 의자도 책상도 모두 사라지고 교사의 자리를 나누는 칸막이만이 먼지가 자욱이 쌓여 골격처럼 공간을 지탱한다. 오후 여섯 시의 녹색 빛이 교무실 벽을 페인트칠한다. 찰나의 순간 숨 막히는 고요와 정적을 느낀다. 문 너머로 좀비들의 죽음 소리가 먹먹하게 블러(blur) 처리되며 귓속으로 아련하게 번진다. 잠시 평화롭다.

그러나 이내 두려움을 느끼고 교무실 문을 연다. 복도로 미끄러지듯 도망한다. 어두운 복도. 이젠 개와 늑대의 시간의 유화물감만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교향곡처럼 복도의 끄트머리로 새어 나온다. 하지만 교향곡의 지휘자는 얼마 못 가 소멸한다. 지휘봉이 부러지고, 교향곡도 들리지 않고, 졸졸 새어 나오던 개와 늑대의 시간의 유화물감도 고갈되듯 사라진다. 좀비들이 가까워왔음이라. 필사적으로 복도의 끝으로 달린다. 좀비들이 복도의 정사각형 입면을 가득 채운 채 적분된다. 복도의 부피를 쌓아간다.


중간쯤을 달리다 복도에 난 교실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간다. 어느 한 해를 보냈던 일학년 육반이다. 아무도 없고 책걸상과 교탁은 가지런히 정렬된 채로 펼친다. 주황색 커튼이 모두 드리워진 창문 입면으로 주황빛 프리즘이 교실 전체를 투과한다. 역시 평화롭다. 시간은 그 해 가을, 아무도 없는 평화로운 주말에 멈춰 선다. 공간도 같이 따스한 시간 속에 가두어진다.

정지한 시간과 가두어진 공간 속을 나는 온몸으로 부딪쳐 깨뜨린다. 유리 바닷속으로 다이빙하듯, 크리스털 결정체의 수은 속으로 충돌하듯 그렇게 깨뜨린다. 시간이 깨진다. 공간이 무너진다. 책걸상과 교탁이 무너지고, 정렬된 엔트로피가 와해된다. 함수 그래프가 출렁이며 시공간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주황빛 프리즘은 날카롭게 깨져 빛의 파편들이 피부 속을 파고든다. 나는 유리 창문에 몸통 박치기를 한다. 거대한 아쿠아리움의 유리벽이 박살 나듯 유리 창문은 산산조각 나고, 나는 수족관의 향유고래처럼 시간의 바닷물과 함께 공간의 파도와 함께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죽을 때까지 가두어지리라 생각한 아쿠아리움의 물들이, 영원히 봉인될 것이라 여겨진 ‘순간’이 시간의 헌법을 어기고 깨어져 소멸한다.


날아오른다. 날아오른다. 꿈속에서 날아오른 적은 기억나는 것만 딱 한 번이다. 그마저도 기록하지 않아 날던 기억이 희미하다. 하지만 이번엔 선명하게 날아오른다. 붕 떠오른다. 하늘이 아니라 바닷속을 헤엄치는 듯한 낢. 낢. 인간은 날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낢이라는 낱말은 처음 보는 듯 낯설다. 나의 낢도 처음이라 낯설다.

하늘은 바닷속이 된다. 깊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산호초 속을 나는 비행. 바다의 깊음에서 수면 위로 부드럽게 날아오르는 비상. 인공의 날개가 돋은 이집트 전사 ‘파라(pharah)’처럼 내 몸속의 에너지가 다하면 깊음 속으로 천천히 침잠한다. 하강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땅에 닿기 전 다시 달음질한다. 바다 같은 하늘에서는 다리가 날개가 된다. 오리발처럼 다리를 구르며 물장구치는 날갯짓.

다시 한번 날아오를 때, 이번에 하늘은 부드러운 눈보라 속이 된다. 붕 떠오른다. 바이킹의 궤도를 사차함수로 표현한 그래프의 최댓값 지점 그 순간의 무중력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붕 떠올라 지상을 관망한다. 수능과 입시가 모두 끝나고 졸업식이 세밑 – 일 년의 끝이 아니라 한 학년이 끝난다는 의미의 세밑이다. 「설국」의 시마무라가 눈보라 속에서 마지막 여정을 기다리며 뿜어내는 입김이 꿈에서 나타나와 이 단어로 기록한다 - 으로 다가오는 마지막 날들.

결과가 좋거나 좋지 않거나 모두가 후련하고 허무한 겨울 입김을 내쉬는 하늘이다. 코끝이 뚫려 상쾌한 콧물이 나도록 청량하게 차가운 입김, 한편으로는 순백의 자기찻잔에 담긴 온기로운온기로 가득한, 꿈에서만 형용할 수 있는 비문법적인 형용사다잎차를 마셔 투명하게 따뜻한 그 입김이 하얀 겨울 속으로 자꾸 올라간다. 마음속에서 폭닥한꿈속에서는 포근한 것이 아니라 ‘폭닥하다’고 느껴진다. 폐쇄음이라고 해서 세게 발음해서는 안 된다. ‘포근한’ 음가처럼 ‘폭닥하게’ 소리 내야 하는 것이다눈보라를 일으키는 날들이 나타나온다.

그런 날들 속으로 날아올라 먼 곳으로 눈을 돌린다. 학교 뒷산이 「설국」처럼, 아름답고 슬픈 목소리처럼 멀리 들려온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진다. 그렇게 하얀 날갯짓을 하며 꿈속의 낢을 난다. 나를 쫓아오는 짐들은 모두 눈처럼 날아가 버린 듯하다.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이번에는 D 고등학교가 아니라, 어느 대학교의 기숙사이다. 본질은 대학교 기숙사지만, 건물은 어릴 적 살던 십오 층짜리 콘크리트로 된 정겨운 아파트이다. 정갈하게 해어진 분홍색 벽면 사이로 유년의 추억들이 섬세하게 덧칠된다.

작은 발자국들이 수없이 아로새겨진 낡은 계단을 끝없이 오르내린다. 계단이 꺾이는 지점에서 어린 나는 난간을 잡고 휙 유턴한다. 빌리 엘리어트 같은 여린 토슈즈를 구르며 서투르고 귀여운 발레를 춘다. 아이와 가족이 살던 꼭대기 층을 찍는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은 역시 검은 쇠창살로 굳게 잠긴다. – 작은 소년은 쇠창살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궁금해하며, 알 수 없는 옥상을 선망하곤 했다. 옥상 너머엔 트인 하늘이 펼칠 텐데, 아이는 결국 그 하늘을 마셔보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 했다.

중간층쯤 다다랐을까. 그 복도식 기숙사 층에 R이 산다. R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R은 도시락도 먹고 잠깐 바람도 쐬러 밖으로 나온다. 나는 문득 좀비가 생각난다. R에게 기숙사 방에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R은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쁘다는 한 마디만 남기고 계단을 내려간다.


하염없이 안타까워하며 나는 계단 복도에 난 창문에 얼굴을 들이민다. 낮게 구름이 깔린 하늘이 얼을 어루만진다. 창문 너머로는 낡은 초등학교가 보인다. 낮은 구름층 너머에, 일어날 침대와 눈을 띄울 태양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는 꿈과 같다. 그래서 꿈속에서 기도를 하는 건 꿈속에서 또 꿈을 꾸는 것과 같다. 꿈속의 기도는 꿈이 되고, 꿈이 된 꿈속의 기도는 현실이 된다. 그렇게 꿈은 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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