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Food & Poem 3 - 백석을 한 모금 마시다

by 어진


미성년의 끝자락 겨울엔 눈이 내렸다. 마지막 첫눈은 이월이었다.


부엌에서 쌍화탕을 달이는 냄새가 났다. 모두들 나무 탁자에 둘러앉았다. 달콤한 탕약을 마시다가 시집 한 권이 생각났다. 고삼 끝가을에 우연히 만난 시집. 수능을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둘러대고, 도서관에서 참고문헌을 찾아가며 시집 속 한자어의 뜻을 풀이하고, 학교 언덕에서 나풀거리는 그해의 마지막 낙엽을 주워 쪽마다 포개 놓고, 밤새 읽으며 시 한잔 한잔마다 맛과 느낌을 적었던, 그 사람의 시집.


가족들에게 그 사람이 탕약을 달일 때 지었던 시를 읽어주었다. 모두들 눈을 감고 달콤 쌉싸름한 시를 마셨다. 어느새 그 사람도 살포시 앉아있었다. 시가 있고 그 사람이 있고 가족들이 있고 깊은 눈이 있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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