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수필 4 - 카탈루냐 카페에 박제된 이상의 「날개」
때가 늦었다. 몬주익 언덕을 내려올 땐 벌써 집집들과 가게들의 불은 꺼지고 주홍색 가로등불들만 고요했다. 주홍색 가로등불, 그것은 바르셀로나 특유의 색깔이었다. 다른 대도시 가로등과는 다른 바르샤만의 밤 색깔. 고요히 익어가는 깊은 오렌지 같은 밤, 검고 어두운 과육이 침묵하고 있었다.
람블라's 거리에선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이파리처럼 뚝뚝 떨어지는 슬픈 사람들. 모두들 어디로 가는 어둠 속의 등불인지. 그 도시의 오래된 작은 집에 살던 여인도 결국엔 이방인이었다.
그게 누구든, 고요히 흐르는 주홍빛밤 고속도로처럼 바다 건너 저쪽엔 무엇이 있을까, 하고 항해하는 자는 다 이방인이리라 생각하며 서성이다 허름하고 텅 빈 갈색 카페로 들어갔다. 사람도 뜸한 곳이었다. 심심한 맛이 나는 샐러드와 뜨끈한 감자 같은 것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져 나왔다. 이렇다 할 특색도 맛도 없는 무표정을 먹곤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핫쵸코렡을 마시고 스페인식 츄우-로스를 쵸코렡에 담가 먹었다. 쵸코렡은 뜨겁도록 달콤했고 츄우-로스는 식은 꽈배기 맛이 났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쵸코렡이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 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레스토랑의 거추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소리가 모짜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여객이 슬며시 뜸해지고 늙은 지배인은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닫을 시간이 되었던 식당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호젓했고 사평역처럼 쓸쓸했다. 뜨문뜨문 남겨진 이방인들. 우리도 그중에 하나였고 그믐 같은 밤에는 모두들 말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핫쵸코렡 잔 속엔 그 밤 몬주익 언덕에서 보았던 우주가 있었다. 나는 언덕 위에 서서 내 자라온 스무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 할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 이상의 「날개」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