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어진아씨 어진아C
Jan 29. 2021
“언니, 주말에 언니 방에서 잔다.”
“나, 고3이야. 이젠 내방에서 자는 거 금지할 거야.”
“안 돼! 언니도 잠은 잘 거잖아. 언니 방이 제일 아늑한데, 같이 자고 싶단 말이야.”
“그럼, 내방이니까 숙박비 오천 원만 받을게! 아빠나 엄마도 필요하면 말해요!”
고3이 되는 큰아이는 지난 1월1일에 방 정리를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지 6년이 넘었으나 스스로 청소를 하거나 정리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던 터라 남편과 나는 놀라웠다. 사용하던 책상과 책장을 뺐다. 침대의 위치도 바꿨다. 둘째 방에 있던 큰 책장과 엄마인 내가 사용하려고 인터넷에서 부른 값싼 조립용 책상도 척척 조립해서 방으로 들여놓았다. 버릴 문제지와 참고서들은 과감히 버리고 나니 작지만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언니바라기인 둘째는, 언니 방이 포근해졌다며 주말마다 같이 자길 원했다. 고3이라고, 방해하면 안 된다고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에 큰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거래를 해온다. 사적인 공간에 동생이랑 부모가 막아도 번갈아가며 드나들기를 하니 생각을 바꿨다나. 이용료를 받겠단다. 하룻밤 숙박비에 오천 원이라고 금액도 통보한다. 남편은 억울한지 한소리 한다.
“사용료를 집주인에게도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무슨 소리에요? 어차피 저에게 무상대여를 해준 것이니, 이 공간에 대한 사용권은 저한테 있습니다. 아버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말로는 지지 않는 열아홉이다.
‘하하하. 많이 컸다.’
혹자는 너무 계산적으로 키운 게 아닌가 하고 되물을 수 있지만 나의 훈육 기준은 ‘말과 행동이 나는 물론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가?, 나의 욕구뿐만 아니라 타인의 욕구충족을 방해하는가?’이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본인과 주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본인의 욕구충족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욕구충족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면 굳이 못하게 막지 않았다.
큰아이 말마따나 설사 부모의 집이라 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자녀에게 무상으로 대여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본인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못하게 말리 필요는 없다. 특히나 언니랑 같은 공간에서 자고 싶은 동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고 본인의 욕구나 바람(나 만의 공간에서 혼자 자고 싶지만 용돈도 필요하니 숙박비로라도 받자)도 충족하는 것이니 나쁠 게 없다.
둘째는 한술 더 떠서 이번 숙박비를 외상으로 장부에 올려달라고 한다. 주말에 엄마아빠 따라 밭에 내려가서 일을 하고 품삯을 받아오면 주겠다나. 못 말리는 십대 자매인데, 지켜보는 내내 입 꼬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간다.
#고3의언변 #자기방이용료#고3의용돈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