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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아씨 어진아C Sep 03. 2021

사춘기의 말 - 필요 없어서 버린 것 뿐이야!

둘째가 겨울 방학식 하는 날은 마침 휴가였다.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학교 근처 주차장으로 데리러 갔다. 새학년 교과서들을 받을 거라 짐이 많다고 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전 학년이 쏟아져 나와 붐빌 테지만 코로나19로 방학식 날도 한 학년씩만 등교하는 것으로 조치가 취해져 한산했다. 아이들 손에는 에코 가방이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아마 학교에서 나눠준 것 같았다. 얼마 후 힘들게 교과서들을 안고 걸어오는 둘째를 발견했다. 

    

“에코 가방 들고 가는 애들이 있던데, 너는 못 받았어?”

“아니, 우리 학년 전부가 받았어. 수업 시간에 그림도 그려 넣었어.”

“그럼 어쨌어? 그거에 교과서 담고 오면 편할 텐데.”

“교실 쓰레기통에 버렸어.”

“왜?”

“그림 그린 것도 망했고, 학교 마크가 있어서 사용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애들도 많이 버렸어.”

“네가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새것을 버렸다고?, 그것도 교실 쓰레기통에?”

“......”     


해맑게 대답하는 둘째의 말을 듣다 보니 기가 막혔다. 아니 화가 났다. 그게 내 표정에 나타난 모양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둘째가 입을 다물었다. 집에 도착하고서는 쌩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간식을 준비해서 큰애와 둘째를 불러 식탁에 앉혔다. 큰애에게도 둘째의 행동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오늘 네 행동이 어떤 것 같아? 필요 없다고 새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동 말이야.”

“아니,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또 말하게. 흑흑”

둘째는 간식을 먹다 말고 억울한지 눈물을 쏟아냈다. 

    

“응, 엄마 생각에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애. 그래서 언니 있는 데서 같이 얘기해 보자고 꺼내는 거야.”

“동생아, 나도 다른 건 잘 버리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필요한 애들에게 준 것도 아니고 새것을 맘에 안 든다고 그 자리에서 버린 거잖아.”

“길 가다가 길바닥에 버린 것도 아니고 쓰레기통에 잘 버린 거잖아.”

“교실 쓰레기통에 버린 거라 괜찮다? 애쓰게 준비한 선생님들이 그걸 보면 기분이 어떨까?”

“그야 안 좋겠지. 그런데 나만 거기 버린 게 아니야. 우리 반 대다수가 버렸어.”


“그래, 다수가 그러더라도 너는 안 그랬으면 해서 말을 하는 거야! 그것도 엄연히 학교 예산을 들여서 구입했겠지. 그걸 구입하는 과정에서 어느 선생님인가는 여러 업체에 연락하고 가격 비교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마련했을 거야. 애쓰게 준비해 나눠 준 것을 바로 교실 쓰레기통에 버린 걸 보시면 선생님들 마음이 어떨까? 네 손에 주어지는 물건들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있는 것들이야.”

“동생아, 마음에 안 들더라도 우선 책들을 넣고 집에 갖고 온 다음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재활용 수거함에 버려도 늦지 않아.” 

“천인데 어디에 버려?”

“의류함에 넣어도 돼.”

“알았어. 다음부터는 그렇게 할게. 잘못했어요. 순간적으로 나만 생각했어.” 

    

대화를 나눠보니 둘째의 행동에 큰 악의는 없어 보였다. 물자가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철없는 십 대의 행동이었다. 그런 행동에 준비한 사람의 마음이 상하거나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하찮게 생각되는 물건이나 음식, 농산물 등이 내 손에 오기까지 많은 사람의 시간과 노력, 애씀의 스며들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의 입장으로 그런 나를 본다면 꼰대 같아 보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돈을 주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풍족한 세상이라지만 사소한 물건 하나도 귀하게 여기고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요 없다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재활용해서 그 물건의 쓰임을 최대한 활용한 후 없앴으면 했다. 그 물건을 만드는 데 든 돈과 사람들의 노동, 환경의 파괴 등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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