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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Mar 26. 2022

엄마와 삶의 공통점




삶은 내게 원하지 않는 것도 주려한다.

이것도 먹어봐, 저것도 먹어봐. 몸에 좋은 거야.

오랜만에 명절에 보는 엄마처럼.

저런 때의 삶과 엄마의 다른 점은 나를 위해주느냐, 안중에도 없느냐 하는 것이다.

다정하지 않을 때의 그것은 무방비한 나를 휩쓸고 가는 태풍이고, 나를 향해 겨눠진 화살촉이고, 내 발에 걸린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럼 나는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고 넘어진다. 이제는 안다, 버티려 할수록 크고 요란하게 넘어진다는 것을.
그럴 때에는 얼른 삶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고, 수습하는 것이 이로운 경우가 많다.







어른이 되었구나. 하고 가장 크게 느낄 때 중 하나는 무언가를 체념할 때이다.
어릴 때 나는 안되는 것은 없는 줄로 알았다. 안되는 것은 다 내가 요령이 없고, 그만큼의  수고를 하지 않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살다보니 절대 안되는 게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행선처럼 내 눈에 가깝게 보이지만, 절대 맞닿을 수는 없는 어떤 것들.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주듯, 그것들을 포기하는 대신 나는 나에게 사탕을 주기로 한다.


그리고 내가 서있는 이 선상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를 내다보려 한다. 음, 일단 저기까지는 갈 수 있겠군.
세상에는 안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은 어쩔 수 없지였다.







 앞의 이야기를 떠나 평소에는 삶은 평행선보다 나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어떻게 뻗칠지 모르는, 랜덤의 미학.
이 나무가 어디서 가지를 치고 얼마만큼 자라날지는 모른다.


나무를 눈여겨보고 여러 해 기르는 사람들은 안다. 이 모양은 여기로 뻗치겠군. 이 가지는 잘라내야 나무가 건강하겠군.

스스로를 잘 돌보고 사람의 내면을 잘 관찰하는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도통 나무나 식물과는 연이 없어서 어쩌다 가지가 잘려 나가면 허둥지둥 대기 십상이지만.

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다. 허탈해하고,  분노하고, 환희에 차기도 하고 들쭉날쭉한 것은 삶이 아니라 나였던가?

이해하려 하면 금 태도가 바뀌어있다.
얼굴이 백개는 되는 페르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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