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진 Jun 09. 2022

좋은 날, 좋은 옷

한복 짓는 사람의 마음


화창하고 푸른 6월의 예식








얼마 전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는 한복을 지어주었다.
예복을 지어주는 친구는 두 번째다.
한동안 작업대는 연한 핑크빛으로 넘실대었다.



새로 짜여진 명주들



중하게 명주와 실을 자르기 전에 눈으로, 손으로 다시 한번 매만지며 점검한다.
땀수는 아주 작고 촘촘히, 속도도 느리게 재봉틀을 발로 구른다.
집중해서 땀을 꿰다가도 재봉틀 소리가 꼭 한복을 토닥, 토닥 하는 것 같이 려 웃음이 나려한다.



잠깐의 찰나에도 올이 틀어질 수 있으니 다시금 집중해서 올을 찾아 꿴다.
엇나간 올 위로 바늘땀을 대충 다시 박나 할 수 없다. 예복으로 입는 옷은, 좋은 날마다 꺼내 입게 될 옷은 그래서는 안된다.



입을 사람이 정해진 옷은 의식해서 더욱 가장 좋은 생각할 때에 가장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듯이 바느질을 하게 된다.


조금 쉽게 할까,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은 걸러내고,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는 순간순간 기도하듯 건강해라. 행복해라. 좋은 일 있어라.라고 속으로 되뇌며.
적어도 몇백, 몇천 번을 되뇌면 한 번 정도는 좋은 일이 생기겠지. 조금쯤은 더 건강해지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으로 옷을 짓는다.



얇은 명주를 잡고 첫 올을 튕겨낸 순간부터
수백 번 시침을 하고
패턴을 그리고
깃을 올려내 저고리가 되는 때까지
저고리에 흩뿌려질 은박 무늬로는 정갈한 배꽃이 어울릴까,
어여쁜 매화꽃이 더 어울릴까,
아니면 상서로운 구름이 좋으려나, 하는 고민들을 거쳐
망치로 살살 두드리며 하나씩 은박을 새기고
동정을 단단히 꿰매고, 살랑거리는 고름을 달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돌이켜보니 못 살 수는 없게끔 축복을 거듭했더랬다.
반드시 행복해질 사람들.



더 많은 옷을 지을수록 빨리 완성되고,
숙련된 만큼 시침도 덜 하게 될 테니
친구들은 결국 가장 오랜 시간 나의 기도로 지은 옷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좋은 마음을 갖게 해 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이 고맙다.
이 기쁜 글을 읽어주는 당신에게도 마음이 전달되고 덩달아 좋은 일들이 잔뜩 생기기를.




수많은 은박 샘플 도장. 온 벽장 한가득 켜켜이 쌓여있다.                    재밌는 것은 각기 모두 다른 무늬이고, 각자 다 의미하는 바가 따로 있다.


은박 도안 배치중, 바둑알로 보니 직관적으로 확인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행하는 한복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