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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Sep 27. 2021

몰입하고 싶지 않다

편안한 잠... 그것을 위해 머리를 비워야 했다


몰입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마음이 무거워,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들을 누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랐다. 그러다 지금이 왔다. 지금의 평화에 감사하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니, 감정에 과도한 몰입을 하고 있었다. 미리 겁을 내고, 미리 두려워하고. 그리고 남에 대해서도 남의 감정이 어떤가만 살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 과도하게 힘을 써서 그런 걸까. 힘을 쓰고 싶지 않다.



영어 선생님의 어머니께서 입원하셨다. 난 그 어머니를 모르지만 선생님을 안다. 혼자 응급실을 가고 입원에 간병인까지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드셨을까. 힘든 날들을 보낸 탓인지 이런 말씀도 하셨다. "차라리 결혼이라도 했더라면 누군가가 있었을 텐데." 혼자 몸으로 끙끙댔단다. 응급실에 가기 전에 짐을 챙기는 것부터 해서 사람이 없어서 간병인을 두는 것까지.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단다.



선생님을 보며, 언젠가 닥칠 내 일을 두려워했다. 나에게도 저런 순간들이 올까. 싫다, 싫다 고개를 저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냉정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집에 갈 때 정신을 차렸다. 난 지금 행복을 누릴 순간이다. 그분의 아픔을 개인적인 시간으로까지 끌고 와 같이 아파할 순 없는 노릇이다. 선생님의 처지가 '나라면'이라고 시작되는 순간은 끔찍하다. 그래서 선생님만 보면 인상이 찌푸려지고 고생하겠다, 마음이 안 좋겠다 하며 염려가 되지만 그 외의 공간에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내 감정에 몰입하지 않으려고 한다.



친척 오빠의 일도 그렇다. 친척 언니한테 전화가 오더니 오빠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나에게 전했다. 첫날은... 오빠의 웃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착하던 오빠가 어떻게... 젊디젊은 오빠가 어떻게... 그러다가 둘째 날이 되고 셋째 날이 되어서는, 오빠를 내 멋대로 재단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병에 걸렸지만 전보다 행복하다는 사람을 봤다. 나 역시도 불행한 일 이후에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오빠도 그럴지 모른다. 전보다 덜 외롭고 전보다 덜 쓸쓸할 지도. 그렇게 마음먹으니 아린 가슴이 점차 나아졌다. 그렇게 감정의 몰입에서 빠져나왔다.



사소한 것들 하나에도 몰입했었다. 토요일에 학원에 수업을 가니 웬 남자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학부모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새로 오신 수학 선생님이었다. 처음 뵈었다. 그리고 난 아무렇지 않게 "빵 구워서 먹을 건데, 선생님 것도 해 드릴까요?" 하며 잘도 웃었다. 사실 내가 하나를 구워서 먹으려고 한 건데... 의도치 않게 선생님 것만 해 드리고 나는 못 먹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 오해하면 어쩌나. 내가 자기 것을 해 주려고 자꾸 오븐을 들여다보고 심지어 복도에 서 있었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하다가 그것도 스쳐보냈다. 생각하면 뭐 하나 싶어서.



이렇게 몰입하지 않는 연습을 하다 보니, 하루가 간단해지고 편안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매일 생각에, 근심에 휩싸였는데 말이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몰입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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