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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Sep 23. 2021

툭 건드리면 까르르 하고 대답한다

시도 때도 없이 웃겨서 웃어요

사람을 만나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다면? 나는 배시시 웃어 버린다. 최근에 나를 살펴본 결과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습관 같은 거다. 카톡이 와도 영상으로 만나도 나는 배시시 웃어 버리고 만다. 처음엔 오해했다. 내가 왜 이럴까, 지금 만나는 사람이 이렇게 좋은가 하고. 좋은 것도 좋은 것이지만 습관인 게 더 큰 이유다. 남동생이 별 말을 하지 않았는 데도 웃기다. 다 나의 웃음 탓이다.



고등학생 때까진 이러지 않았다. 대학을 붙고 고등학교에 가자 얼굴이 밝아졌단 소리를 들었고 대학에 가서 억지로 웃다가 입꼬리가 아팠으니 그 전엔 이만큼 웃지 않은 게 확실하다. 웃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언니처럼. 언니는 아침부터 웃는 사람이었다. 내가 밥 먹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말없이 웃던 사람이었다. "왜 웃어?" 하고 나의 저기압을 보여주면 언니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침에 언니가 웃는 게... 왜 나빠?" 그러면서 웃던 언니다. 기분은 나쁜데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언니만 쳐다봤었다. 뭐 저런 언니가 다 있나 하고.



그런데 이젠 언니의 마음을 조금 알겠다. 모든 게 다 웃기다. 인터넷 공유기가 고장 나서 서비스센터에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있길래 혹시나 했지만 무시하고, 다시 서비스센터에 전화했다. 알고 보니 그건 수리 기사님 번호란다. 남동생이 그 소식을 듣고 카톡을 보냈다. 'ㅋㅋㅋㅋㅋ 바봉(바보)' 실수한 게 민망해 여러 번 웃었다. 내 실수도 그저 웃기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면 어떠하겠나. 남에게서 뻘쭘해하거나 어색해하는 게 느껴질 때 웃음이 나고 졸려하는 얼굴도 웃기다. 오늘 학원에 ㅂ군이 국어 시간에 뾰로통해 있었다. 원래 장난을 잘 치는 아이인데 이상하다 싶었다. 은근히 "ㅂ군은 이 시간에 숙제하면 돼."라고 말하며 ㅂ군이 숙제 안 해 온 것을 혼내지 않고 웃어줬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피곤하구나~"라는 나의 말 때문인지 나중에는 ㅂ군이 흥얼거리며 노래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 과학 시간엔 유지했는데... 지금은 점점 텐션이 올라간다~ 아~" 귀엽지 않나? 난 또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보다 더 웃음이 많아지길 빈다. 툭 건드리면 까르르 하고 대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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