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로 보지 않는 시각
문제는 문제로 보기 때문에 생겨나
20대 아들이 군대를 다녀오고 3년이나 집에서 놀았다. 그 사이에 아들의 친구들은 직장을 잡았고 꿈도 이루었다. 비교하면 안 된다지만, 동갑인 친척은 경찰관이라는 꿈을 이루었고 한참 어린 친척은 자기네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어엿한 회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아들은 어디를 지원해 볼 생각도 없이 그저 게임만 하더니 작년부터 아르바이트를 다닌다.
나는 그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느린 거겠지 싶고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 아들을 둔 엄마는 다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뭘 하냐고 직업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여기에 아빠는 엄마의 잘못을 짚고 넘어가니 엄마가 속이 터질 수밖에.
엄마는 아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엄마가 오히려 문제만 보고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20대 아들도 결코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문제가 있는 걸로 보인다. 그처럼 걱정을 하면 죄다 그래 보인다. 오른쪽이 불편해 병원을 갔더니 수술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큰 병원에 옮겨 검사를 다시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동안 참 많이도 울었다. 엄마를 붙잡고 이틀 연속으로 울고 언니랑 전화하다가 울기도 하고 원장님 앞에서 울고 친구들 전화받을 때마다 울었다. 이젠 다 울었나 싶으면 언제고 눈물이 났다. 그렇게 걱정하고 우울하게 있으니 모든 게 다 부질없어 보였다. 문제를 푸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산책하는 것도 햇볕 쬐는 것도 모두. 오른쪽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계단도 늦게 오르고 내려야 하고 버스 타기도 불편하며 지하철이 기우뚱하면 같이 기우뚱거리는. 손은 말해 뭐해. 타이핑부터 쓰기까지 죄다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제 문제로 보지 않으려 한다.
오른쪽이 불편하다 보니 천천히 걷게 된다. 안전을 생각해서 규칙을 준수하게 되며 꼭 인도로 간다. 게다가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는 챙겨서 잡으니 안전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달라진다. 나처럼 느리게 걷는 어르신을 보면 얼마나 답답할지 생각하게 되었고 뛰어다니는 젊은이를 부러운 눈길로 보게 되었다. 오른손이 불편하니 왼손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왼손으로 하다 보니 왼손잡이의 불편함도 알게 되었다. 또 왼손의 실력이 늘기도 하고.
다 경험이다.
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경험.
오늘 후배가 문자 했는데 태연히 나의 상황에 대해 말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이젠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걱정하지 않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걱정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