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하며 버스에 탔다. 여고생들도 버스에 탔다. 버스가 출발하고 두 정거장쯤 지나 통화를 마쳤는데 갑자기 기사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들 요즘에 버스에서 말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떠들고 있던 터라 여고생들이 이야기 나누는 줄 몰랐다. 그리고 기사분의 말을 들어보면 나 또한 떠들고 있었기에 잘한 게 없어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기사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죄송합니다~" 하는 여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라면 죄송하다고 했을까.
마스크를 꼈고 격렬하게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 게 아닌데, 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사람들 앞에서 면박 줬다 생각하지 않을까.
나도 나를 알지 못하는 터라 죄송하다고 말을 했을지, 대답을 안 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말이 나를 생각의 끈을 타고 이동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언제 남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너의 지적을 이해한다, 너의 말을 이해했다, 즉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죄송하다를 말하는 건 자주 본다. 학생들이 그렇다. 이건 너의 잘못이야,라고 내가 말하면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피하는 아이, 죄송하다고 말하는 아이, 나와 눈을 맞추며 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는 아이 등 다양하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은 날 바라보며 반문하는 아이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너의 잘못이 무엇인지 백번 설명해도 그 눈은 바뀌지 않고 입은 다물어져 있다. (차라리 입을 열고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해 주면 더 좋을 텐데.) 그 상태에선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 나의 지적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죄송하다고 재빨리 말해주는 아이를 좋아한다. 그래야 화를 그만 끊어내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럴 때 내가 듣던 죄송하다와 오늘 버스에서 마주친 죄송하다는 크게 다를까. 다르지 않다. 여고생은 이렇게 말해도 되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너의 지적을 받아들인다는 '알겠다' 정도가 더 적정하지 않나. 지적을 받아들이고 이행한다의 '알겠다'가 '죄송하다'로 바뀐 건 그들이 어리기 때문일까. 그래서 거꾸로 생각해봤다. 내가 권력이 있고 나이가 많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답했을까.
여전히 난 날 잘 모르기에, 모르겠다. 단지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변명 제하고 순수하게 죄송한 순간이...
오늘은 죄송하다는 말이 어쩐지 듣기 불편했다. 죄송하다 할 것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