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라고 별건 없지만 신발끈을 단단히 묶으며

"이상견빙지, 이상견빙지" 되뇐다

by eolpit


연말이 다가오면 '내가 뽑은 최고의 ○○"이라는 글들이 많다. 많은 글을 보면서도 정작 내 일 년을 BEST 몇 개로 정리한 적은 없다. 도무지 그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연말이라는 건 별다른 의미가 없고, 12월 31일은 그저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탓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크리스마스는 그저 빨간 날에 지나지 않았다. 기념일을 기념하지 않는 것, 그것이 특별함을 평범하게 만드는 방법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31일이라고 동료 선생님은 수업을 줄이려고 부단히 노력하셨다. 나는 덤덤했다. 31일이 뭐 별 거냐, 그저 목요일일 뿐이지, 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눈을 뜬 아침부터 급히 수업을 다녀왔고, 집으로 다시 와서 온라인 수업을 했다. 맛있는 것을 먹기보다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입에 마구 집어넣었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무질서했고 적당히 지루했으며 적당히 목이 아팠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나는 비로소 오늘이 올 한 해의 마지막 날임을 실감했다. 어느 날과 같이 조용하고 아니 조용하기보다는 음울한 쪽에 가까운 집이, 엄마가 퇴근해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밝아졌기 때문이다. 어제의 엄마와 달리 오늘의 엄마는 밝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저녁 먹었어?"라고 말했다. 그에 아빠도 좋은 말씨로 대답을 했다. 힘이 있는 목소리와 따뜻한 말씨, 그것은 집 안에 있는 사람이나 집 밖에 있는 사람이나 똑같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자 받고 싶은 에너지다. 엄마와 아빠의 말로 덩달아 힘을 얻은 나는 그제야 목에 힘을 주고 밝음을 발산했다. 그리고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이야기하면서 오늘이 마지막 날임을 상기했다.



지나온 2020년이 어떠했는지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과거는 아무런 힘이 없다 느껴지니까. 대신 내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상견빙지


서리를 밟게 되면 머지않아 단단한 얼음을 보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을 알게 된 건 수업을 하던 도중 알게 된 소설, 「패강랭」을 통해서였다. 오랜만에 평양을 방문한 현은 달라진 고향의 모습을 보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평양 여인네들의 자랑거리이던 머릿수건은 자취를 감추었고, 커다란 경찰서가 들어섰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졌음을 뜻한다. 이 소설의 끝은 이렇다. 현은 친구와 다투고, 술을 한 잔 마시며 이렇게 되뇐다. "이상견빙지... 이상견빙지..." 현의 마음은 아마 이런 것일 게다.



'조선 문화를 말살하고 조선인을 압박하는 일제의 태도가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안타깝다.'



나는 현의 마음을 '안타깝다'로 보았었다. 앞으로 더 심해질 풍파를 소설가인 현이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그저 방관하고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다가올 어둠을 무겁게 바라보며 탄식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나는 31일인 오늘 '이상견빙지'를 되뇐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자신할 수 없다. 밝음을 가져보려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려고 노력했는데 어쩐지 내일이 더 신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일이 오늘과 같을 거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괴로워질 거라는 생각뿐이다. 그런 와중에 떠올리는 '이상견빙지'는 숨 막히는 이 사태를 바라만 보며 술이나 마시겠다는 게 아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잘 견뎌낼 것이다.", "잘 이겨낼 것이다.", "삶을 그래도... 사랑해보리라."라는 다짐을 이끈다.



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견뎌낼 것이다. 삶이 주는 고통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며 받아들일 것이고, 삶이 주는 기쁨은 무한한 감사함으로 누릴 것이다. 이제는 안다, 기쁨을 누리는 감사함보다 고통을 순응하며 받아들이는 데에는 몇 천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 나가며 나는 내일의 숨 막히는 어둠을 잘 견뎌낼 것이다.



31일인 오늘 나는 '이상견빙지'를 떠올린다. 현도 이런 나와 같았을 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언제 죄송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