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이 없어도 곧은 말과 곧은 행동을 원해

<패딩턴 2>를 보며 어린 날의 눈으로 내 삶을 돌아본다

by eolpit

<패딩턴 2>에서 패딩턴은 교도소 안의 너클스가 만든 끔찍한 음식을 맛보고는 너클스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며 나선다. 교도소 동료들은 패딩턴에게, 너클스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는 큰일이 난다고 말하지만 패딩턴은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너클스에게 다가간다.

“루시 숙모가 말하기를 착한 마음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착해진다고 하셨죠.”


그 뒤로도 패딩턴은 교도소 동료들에게 ‘루시 숙모가 말하기를’이라고 시작하는 말을 자주 한다. 루시 숙모가 말하기를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세상도 좋아진댔어요, 루시 숙모가 말하기를 ‘항상 포크를 써라.’고 했죠......



루시 숙모가 한 말은 전부 옳다.


어려서부터 남의 충고를 받으면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보고 판단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남의 말을 전적으로 따르는 아이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었어도 그렇다.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믿고 있으며, 욕을 쓰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함부로 굴면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잘은 안 되지만......) 이런 나를 어떤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다고 했다. 나 자신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남에게도 권했고, 남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서는 반에서 좀 논다고 하는 아이들은 전부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말씨가 무서웠고, 그들이 뱉는 침이 그들을 옳지 않은 사람이라 여기게 했다.


성인이 되어서 알았다. 나의 융통성 없는 행동과 시각이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삶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점점 나는 융통성이 있는 척했다. 요즘 말로 바꿔 말하자면 꼰대가 아닌 척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아니 타고나길 젊은 ‘꼰대’였는데 나이가 드니 그야말로 꼰대가 됐다. 그런데 꼰대로는 서로 소통할 수 없으니 교과서적인 말을 안 하려 노력하고, 교과서적인 생활을 거부하려 노력하고, 다양한 삶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삶도 융통성 있게 대했다는 것에 있다. 딱딱하고 정형화된 삶에 안정감을 느끼는 내가 융통성 있는 흐물흐물한 삶을 살려고 하자, 사방이 혼란이고 외로움이고 고독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나의 삶에는 기준을 철저히, 패딩턴이 하는 말처럼 살아가려 하고, 남의 삶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왜 패딩턴이 하는 올곧은 말이 이리도 눈에 선명할까.




남의 삶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 사실은 비겁했기 때문이다. 패딩턴처럼 남들에게 올곧은 말을 하면 미움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들을 이해하는 척, 너의 삶은 너의 삶이니까 마음대로 해라 하고 여기는 척, 너그러운 척했을 뿐이다. 속으로는 ‘손으로 먹으면 안 돼. 포크로 먹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패딩턴의 올곧은 말. 그건 올곧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용기였다.





영화를 초반에 패딩턴이 아침에 길을 나서는 장면이 나온다. 아침 길을 나서자마자 이웃 ‘아가씨’의 자전거를 타 그녀에게 샌드위치를 건넨다. 또 열쇠를 자주 깜빡하는 자프리 박사님에게 열쇠를 챙기라고 말을 건네며, 항상 툴툴대는 대령님에게 인사 건네고, 키츠 양에게 어제의 데이트가 어땠느냐고 물어보며 신문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전거에서 청소차로 올라타서는 반스 씨가 외운 것들을 테스트한다.


이건 내가 바란 교과서적 삶이 아니던가. 이웃과 서로 공동체를 이뤄가며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런데 난 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누려본 적이 없을까. 어려서 이웃과 사이좋게 지냈다. 그건 부모님 ‘덕’이고 윗세대 ‘덕’이었다. 그분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놓아서 그 즐거움을 조금 맛본 것뿐이다. 정작 어른이 된 나는 그런 공동체를 이루지도 못하고 외로워하며 힘듦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다가가질 못하고 있다. 교과서적인 삶을 갈망하면서도 말이다.




패딩턴이 하는 말, 모두 옳다. 그래서 루시 숙모가 이야기한 것처럼 살아가고 싶다.

패딩턴이 이웃에게 한 행동, 모두 옳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그들의 사소한 것들을 챙겨주며 하나가 되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패딩턴 2>를 보며 어렸을 때의 눈으로 돌아가 지금의 삶을 바로잡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간'에 대해 따뜻함을 갖고 싶다면 콜리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