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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04. 2021

나이가 몇이냐

새해를 맞이하여, 나이를 점검한다.

나이가 몇이냐 한다. 올해 서른셋이 된다고 했다. 그럼 서른 중반이냐고 하며 그건 서른 초반과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연애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정말 내가 나이가 많은가,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수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너 나이가 몇 살이냐? 중학생도 아닌데 왜 이래?”다. 이 말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웃으면서 가볍게 “나이가 몇이냐?” 하는 것과 정말 화가 나서 나이가 “몇 살인데 이래!” 하는 경우. 후자의 경우엔 대표적인 사건이 있다.      



처음 뉴스를 듣게 된 건 수업 중 학생을 통해서였다. 틱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며 방송을 하던 유튜버가 알고 보니 일반인이었다는 뉴스였다. 뉴스를 듣자마자 나는 화가 났다. 따라 할 걸 따라 해야지, 나이가 몇 살인데 분간 못 하고 그런 걸 따라 하냐고. 화가 나서 그 사람이 너무 잘못했다고 흥분하며 말했는데, 쉬는 시간 때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틱 장애를 따라 하는 걸 보았다. 더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리고 다시 강의실로 들어가 말했다. “평소 같으면 너희들이 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텐데 내가 방금 이건 농담으로라도 따라 하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근데 이걸 따라 하고 있다고? 너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런 인식도 없이 함부로 행동해!” 내 머릿속엔 그들이 18살이라는 게, 성인에 가까워졌다는 게 더 화가 났다. 18살인데!     



오늘도 그랬다. 온라인 수업을 하던 중 ㅅ에게 질문을 했다. 카메라를 꺼두고 마이크를 꺼두던 ㅅ이 자기 이름이 들리자 마이크를 켰는데 순간 ㅅ에게 음악 소리가 들렸다. 수업을 안 듣고 음악을 듣고 있었구나 생각하며 질문을 마저 했는데 ㅅ이 아주 기초적인 질문에 답을 못 하는 거다. 그 질문에 답을 못 한다는 건 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도 괜찮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너 수업 안 듣고 뭐했어?” 그랬더니 “...... 화장실 다녀왔어요......” 난 믿지 않았다. ㅅ이 답변할 때 앞에 흐르던 정적. 그것은 화장실 다녀와서 죄송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ㅅ이 거짓말을 생각해 내는 순간이었다. 진실하지 않은 게 싫다. 슬금슬금, 야금야금 틈만 나면 거짓말로 둘러대는 게 싫었다. 그래서 또 말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 화장실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지. 그런 예의도 없어? 수업 중에 그냥 다녀오면 카메라도 꺼져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니 내가 당연히 수업 안 듣는 걸로 의심하지. 의심받는 거 싫으면 당당히 카메라를 켜.” 그러나 ㅅ은 끝까지 카메라를 켜지 않았고 내 말에 반박하지도 않았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그건 그간 봐 온 ㅅ을 생각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거였다.      


나이가 몇 살인데!


내가 자주 내뱉는 소리다. 나는 학생들의 나이를 기준으로 학생들이 지켜야 할 예의와 행동을 강요한다. 중학교 1학년은 아직 어리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은 어리지 않다. 그러니 3학년에게 1학년보다 더 많은, 예의 있는 행동과 지각 있는 행동을 요구한다. 고등학생에겐 더 하고.     



난 나 자신이 삼십 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걸 안다. 그런데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나이를 아무리 생각하고, 내 나이에 걸맞은 행동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안다 해도 그걸 내가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제 나이게 맞게 행동하는지를 말이다.      


나이에 따른 행동을 강요받는 것. 그것이 어느 때는 억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타인과 만남에서 낯섦을 깨뜨리는 건 바로 나이, 직업, 성별 등일 테니까. 너무 철없이 살아가고 싶진 않다. 나이를 생각하며 나의 철없는 행동을 억지로라도 누르고 싶고, 없었던 넓은 아량을 뽐내고 관용을 베풀고 싶다. 그렇게 해서 나이가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와 더불어 잘못된 행동도 덜 하고 싶고.     


헛되게 나이를 먹은 건 아닌지, 앞으로는 나이에 맞게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새해를 맞이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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