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olpit Jan 06. 2021

마음을 뱉어낼 수 있는 순간

메리 앤 섀퍼, 애니 배로스의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야기는 줄리엣 애슈턴이 도시 애덤스로부터 받은 편지에서 시작된다. 도시 에덤스는 건지 섬에 사는 농부로, 줄리엣이 예전에 갖고 있던 책 『엘리아 수필 선집』을 소유했다. 그 책에 적힌 줄리엣의 주수로 도시 에덤스를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의 목적은 이렇다. "다른 작품이 있다면 당연히 읽고 싶은데, 독일군은 건지 섬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서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하려 합니다."



줄리엣 애슈턴은 도시 애덤스에게 책을 한 권 보내주면서 그에게 그가 속해 있다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 대해 묻는다.






건지 섬은 채널제도 중 하나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침략을 받았다. 독일군은 건지 섬사람들에게 동물 사육을 엄격히 금했다. 가축의 수를 세고, 그것들을 엄격히 관리한 대신 섬사람들에게는 감자를 심고 수확해서 그것을 양식으로 삼으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대로 된 식사가 무척이나 그리웠던 섬사람들은 우연히 죽은 돼지 사체를 돌려가며, 자신의 집에 돼지가 죽었다고 독일군에게 거짓으로 보고한다. 그리고는 실제로 살아 있는 돼지를 잡아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 다 같이 몰래 식사를 했다. 그 당시 독일군은 야간 통금 시간을 정해두었다. 그 통금 시간이란 것이 정해진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대로 바뀌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5시에 취침을 해야 했는데, 섬사람들은 오랜만에 맛본 고기에 통금 시간보다 2시간 지나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독일군의 눈에 띄지 않도록 몰래 집으로 돌아가던 중 그들에게 발각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 중 하나인 엘리자베스는 기지를 발휘해 독일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통행금지령을 어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건지 섬 문학회 모임이 있었어요. 오늘은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독일식 정원』에 대해 토론했는데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죠, 혹시 읽어 보셨나요?"



독일군은 영국에게 자신의 통치가 우수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건지 섬사람들의 문화 행위를 장려했다. 그래서 독일군은 통금 시간을 어긴 그들을 처벌하지 않았고, 그 뒤부터 건지 섬사람들은 문학회를 해야 했다. 서점에 가서 모조리 책을 사 책장에 꽂고 정해진 날에 모여 각자 읽은 책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독일군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학회는 섬사람들끼리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고, 공포스러운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며, 배고픔과 굶주림, 그리고 서러움을 책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다.






같은 처지, 슬픔에 대해 이야기 나눠


세네카가 이런 말을 했지요.
작은 슬픔은 말이 많지만, 크나큰 슬픔은 말이 없는 법이다.



슬픔이 내 몸에 담겨 있을 때,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무언의 공기요, 묵직한 공기다. 어떤 소리도 쉽사리 나올 수 없다. 그러나 품고 있으면 있을수록 심장이 무거워, 몸은 땅으로 가라앉고 물속으로 가라앉아 질식해 버릴 것만 같다. 그런 슬픔을 겪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나 좀 힘들어."라고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렵게 내민 손이 상대에게 전해질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원하는 위로와 힘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그런 생각을 접어둔다 해도 공기밖에 나가지 않는 입에서 소리를 내는 일은 큰 의지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문학회라면 다르다.


내 이야기를 직접 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책을 읽고 책의 인물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책의 인물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으랴.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가 무조건 섞이기 마련이다. 눈물도 비치기 마련이다. 그렇게 책을 핑계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던 나의 슬픔을 털어놓으며, 심장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슬픔을 겪을 때, 이야기하는 게 슬픔을 더는 방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게 쉽지 않을 뿐이다.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에서 천지 엄마는 둘째 딸 천지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당당히 지내며 절대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반찬에서 좀 벗어난 얘긴 줄은 아는데,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며? 근데, 엄마는 안 그런 거 같아. 그날 다 흘려보낸 것 같아."

"가슴에 묻어? 못 묻어. 콘크리트를 콸콸 쏟아붓고, 그 위에 철물을 부어 굳혀도 안 묻혀. 묻어도, 묻어도, 바락바락 기어 나오는 게 자식이야. 미안해서 못 묻고, 불쌍해서 못 묻고, 원통해서 못 묻어."

엄마는 맨밥을 듬뿍 퍼서 우걱우걱 먹었다.



자식을 못 묻는다는 엄마의 슬픔을 밥 먹다 갑자기 꺼낸 만지나 그에 대답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들이 슬픔을 어떻게 다루는 지를 자세히 보여준다. 천지의 죽음에 죄책감을 한 아름 안고 있는 가족들. 그리고 그리움을 품고 있는 가족들. 서로 천지 이름을 꺼내면 눈물밖에 보일 것이 없는 가족이지만 엄마와 만지는 이야기 한다. 천지의 죽음에 대해서, 천지에 대해서, 천지가 그립다는 말들을.


괴롭고 힘든 상황일수록 우리들은 더 나눠야 한다, 대화를. 어렵더라도 말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서로에 맺힌 가슴의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건지 섬에 우연히 자리 잡게 된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으며 가슴에 한을 풀어주는 모임이 되었을 것이다.






외롭다면, 편지를...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책임과 동시에 편지 문화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요즘엔 편지와 거리감이 든다. 카카오톡으로 상대방에게 이미 많은 이야기를 했고, 전화로도 전달했으니, 더 이상 편지에 쓸 말이 없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또 편지를 보내면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개념도 많이 사라진 요즘이다. 편지를 쓴 사람이 드물다 보니 받는 사람은 그저 받을 뿐 답장을 쓸 의무감을 갖지 않는다. 사실 편지를 보내는 나란 사람은 답을 받을 기대를 하는데 말이다.


소설 속에서 주고받는 편지는 다양하다. 줄리엣이 건지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편지, 건지 섬사람들 이야기를 소피나 시드니 오빠에게 전하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줄리엣의 편지, 그리고 서로의 애정을 숨긴 채 주고받는 줄리엣과 도시의 편지 등이다. '잘 지냈니? 나 잘 지내.'라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적혀 있고 그에 대해 대답을 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 그것들은 일기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니었다. 상대의 상호작용이 분명한, 그리고 피부로 와 닿는 직접적인 매체인 편지였다.



언젠가 나도 일기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편지를 쓰고, 받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럴리야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