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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05. 2021

그럴리야 없겠지만... 있을 수도 있지

모든 아이들이 악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선한 것도 아니다.

첫 직장에서 6년 정도 일을 했다. 그 사이 나의 20대가 흘러갔고, 그곳에서 귀한 인연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영어 선생님이다. 영어 선생님은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여자분이신데, 나이 차이가 적어서 그런지 꼭 학교 선배 같았다. 우리는 학원에 서로 도착하면 친구처럼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우리는 월, 수, 금에만 같은 학원에 출근했다), 서로 손발이 차다는 걸 알고 손난로를 챙겨 왔으며, 간식거리도 챙겨 와서 나눠 먹곤 했다. 이런 인연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임신을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그때쯤 첫째 조카가 생긴 터라 아기가 얼마나 예쁜 존재인가를 안 나는, 선생님의 임신 소식에 선생님의 행복을 상상하며 축복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선생님께서 퇴근하자마자 응급실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 중에 과격한 남학생 하나가 있었다. 외국에서 가짜 총을 사 오고, 그것을 들고 와서 아이들을 위협했으며, 여성에 대한 혐오가 짙은 남학생이었다. 화낼 일도 아닌데 감정적으로 욱 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그런 남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여자에 대해 깔보는 태도가 있어서, 여자 선생님으로서 그 아이를 통솔하기가 힘겹다. 나 역시도 그때 그 남학생이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영어 선생님께서 응급실에 간 날에 그 아이는 영어 시간에 화를 냈다고 한다. 때마침 나도 퇴근했고, 원장님도 퇴근해서, 영어 선생님이 수업을 홀로 마치고 문단속을 해야 했었다. 욱하는 아이를 혼내고 홀로 문을 닫고 집으로 가려는데 영어 선생님은 남학생이 자주 하던 말, “총으로 쏜다.”는 게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을 졸이며 학원 문을 나서는데, 하필이면 그 남학생과 같은 방향으로 길을 걷게 되었고, 선생님은 무서운 마음에 걸음을 재촉하다가 하혈을 하여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설마 아이가 그렇게야 하겠어?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하는 말인데, 중학교 2학년이면 이미 성인 남성과 같이 키도 크고 몸집도 큰 경우가 많다. 청소년이라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행동을 주로 하기에 화가 나면 어떻게 행동할지 아무도 모른다. 수업하다가도 심한 욕을 선생에게 해 대는 아이에게 어떤 절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때 나는 선생님의 무서움에 깊이 공감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일을 다시 떠올렸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학원에서 나와 일 년 내내 갈등이 지속되는 학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중3이다. 그 반 대부분이 남학생이다. 남학생들 모두는 나에게 반항적이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핸드폰으로 노래를 크게 튼다든가, 수업 시간 끝나기 십 분 전에 들어온다든가 하는 일은 이제 평범한 일이 되어 버렸다. 화도 내고 타일러도 봤지만 한 번 어긋나 버린 관계는 고치기가 어려운 것인지 잘 안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명. 아예 눈도 마주치기가 무서운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내가 한 마디 하면 “뭐요!!!” 하고 대들듯이 나를 쳐다본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아이는 내가 화를 내면 일부러 나를 쳐다보며 비웃음을 띤다. 그리고는 친구들과 쑥떡쑥떡 댄다. 수업을 도저히 못 하겠다고, 수업에서 나가라고 말하면 내 말을 듣는 척도 안 한다. 결국 내가 수업을 듣는 4명의 학생만 데리고 다른 강의실로 이동한 적도 있다.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보니 다른 수업 시간에도 욕을 하고 비웃고 제멋대로 강의실을 나가는 그런 학생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수업 끝나기 10분 전에 들어오는 이 아이가 수업 시작한 지 20분 만에 강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강의실에 들어와서는 한다는 말이 “좆같다”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지만 어쩐지 나는 그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부터 지각생을 원장님께 보고 드리기로 했다. 나는 지각생 명단을 원장님께 드렸고, 아마 원장님께서는 부모님들께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의 아버지께서 문자를 받고, 이 아이에게 연락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가장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연락이 갔으니 처음으로 이 아이는 내 수업에 일찍 들어온 것일 테고.      



그런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평소에 워낙 과격했던 이 아이가 오늘은 욕부터 했다. 내가 퇴근하는 길에 얘가 내 얼굴에 황산을 뿌리면 어쩌지. 퇴근하는 길목에 얘가 숨어 있다가 날 때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모든 아이들이 악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아이들이 선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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