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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an 08. 2021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보고 수업을 결정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성을 발휘해서

과외 상담이 잡혔다. 어제 문자로 나눈 대화에 이어 전화 상담이다. 서로 연락을 받지 못해 부재중으로 전화를 오고 가다 드디어 통화가 되었는데, 막상 연결된 통화는 나를 실망시켰다. 커리큘럼을 요구하더라. 그것도 교재명 정확히. 무슨 테스트를 받는 느낌이었다. '너가 사용하고 있는 교재 이름을 대. 3초 줄게!'


평가를 받는 느낌만 들어서 나 역시도 궁금한 걸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학생의 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학생의 수준에 따라 교재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쪽의 답은 이랬다. "그건 아직 시험을 안 봐서 모른다." 글쎄... 모를 리 없다. 학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이고, 나에게 학원 수업을 보충을 국어 수업을 원한 사람인데, 아이의 실력을 모른다니 말이 되나. 학원에서도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평의 말들을 했었을 텐데.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가 불쾌했다.


대체로 상담이라 함은 아이의 성향을 이야기하고 어떤 선생님을 원하는지 이야기하고, 어떤 수업이 되길 희망하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그와 더불어 나라는 강사가 어떤 사람인지, 아이에 맞게 어떤 수업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내 생각을 듣는 시간인데, 그쪽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요구하기만 했다.

커리큘럼을 갖고 와. 교재 뭐 쓸 건지 이름을 대 봐.



기분이 나빴지만 그것을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돈을 내는 사람 입장에선 따질 만큼 꼼꼼히 따지고 싶겠지.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건 이해할 수 있지만 나와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보자마자 평가하는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다. 나는 나를 평가하려고 눈을 가느다랗게 뜨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나에게 일을 시켜놓고도 잘하나 못하나 계속 감시하고 전화하고 염려하고 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요구에 난 당당히 수업을 할 수 없었고, 결국 수업은 그쪽의 손아귀에 쭈그러지고 쭈그러져 엉망이 돼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경험 때문에 나는 강사를 믿지 않는 학부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 상담 전화를 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을 한다. 학부모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향인지에 따라 말이다.



     

통화를 마치고 퇴근길에 원하시는 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정중히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오는 답은 이랬다.


“네. 전문샘은 아니신 듯.”     


10년 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전문 강사가 아니구나, 몰랐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강사라고 하는 게 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전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우리가 흔히 전문가라고 부르는 의사도 환자 입장에선 의심하지 않는가. 저 의사가 잘못 진단했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내가 초보였다면 난 당신과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을 거다. 그저 나에게 연락이 온 게 기뻐서, 나를 쓸모 있게 여긴다는 사실이 반가워서. 그러나 난 초보가 아니기에 당신을 거절한다. 상대를 신뢰하려는 선의가 없이 평가하려는 첫인상을 남긴 당신과 나는 미래가 밝지 않다. 나라는 강사는 실력은 없을지 모르지만 상대의 선의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계산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수업을 해 주고, 계산하지 않고 나의 여가 시간을 수업에 쏟아 붓기도 하니까. 그런 나이기에 당신을 거절하는 거다.   



   

나는 오늘 나의 전문성을 발휘해서 자칫하면 난감해질 수업 하나를 피했다. 당신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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