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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17. 2021

당신은 이야기의 매력 속으로 빠졌다

눈빛이 마음을 알려준다

상대의 눈이 빛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 식상한 말이 무슨 뜻인지 지금도 잘 모르지만 모르는 말을 믿으며 상대의 눈을 믿는다. 상대의 눈이 지루해 보이면 그게 그 사람의 마음이겠거니 하고 말이다.

오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눈을 보았다. ㅊ양은 낯을 무척 가리는 학생이다. 무얼 물어도 답을 하질 않아서 목소리 듣기가 어렵고, 매일 모자를 쓰고 오는 터라 작은 얼굴이 더 작아져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 변화는 더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는 마음을 내주겠지 하며 기다린 지 한 달 그리고 두 달이 넘어가자 나도 모르게 자연히 가까워지려는 욕심을 포기했다. ㅊ양은 원래 그런 아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늘 빛나는 눈을 따라가다 보니 그 눈의 주인을 알게 됐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던, ㅊ양이었다.

요즘 나는 수업에 곁들어 내가 겪은 일과 생각들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동안 진도 나가는 것에 바빠서 수업을 100퍼센트 교재에만 의지했다. 그런 수업을 진행한 데에는 진도 탓도 있지만 내가 그 반 아이들을 어색해했던 탓도 있었다. 낯 가리느라 내 이야기를 하질 못하겠더라. 그러다 보니 진도 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수업도 재미가 없었다. 수업하는 사람이 이토록 재미가 없는데 듣는 사람은 말해 뭐할까.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더 이상은 재미없는 시간들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은 책상을 끌고 와 엉덩이를 걸쳤다. 다음으로는 말을 천천히 내뱉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여유가 흘러나왔고 차분함이 가득해졌다. 그제야 내가 하던 수업 스타일대로 내 생각을 곁들어 작품을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게 요즘 나의 변화다.

변화된 내 스타일이 좋았던 걸까. 한 번도 고개 들지 않고 눈을 잘 마주쳐주지 않던 ㅊ양의 눈이 자꾸 내 눈과 마주쳤다. 그것도 반짝반짝 빛을 내며, 웃어가면서. 처음엔 그 눈빛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 눈이 ㅊ양에게 자꾸 머문다는 것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알게 된 건 자주 나와 시선을 마주치던 ㅇ양의 결석으로 새로운 눈을 쫓아갔기 때문이다.

ㅇ양과 ㅊ양의 눈빛은 다르다. ㅇ양은 예의상 눈을 마주쳐주는 것으로, 내가 손을 움직이면 눈이 손을 따라온다. 그럴 때면 자극에 그저 반응해 주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반면 ㅊ양은 내 말에 집중한다. ㅊ양과 같은 눈빛을 몇 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논술 수업을 할 때였다. ㄱ양은 논술을 한 번도 써오지 않으면서 수업엔 꼬박꼬박 참여했다. 난 그게 신기하면서도 그저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나중에 ㄱ양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논술 쓰는 거 싫은데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가 재밌어요. 소설 이야기해 주는 거요." 내가 하는 말들을 재밌게 들어주던 ㄱ양의 눈빛과 ㅊ양의 눈빛은 닮았다. 게다가 ㅊ양은 내가 하는 말에 웃어주지 않던가. 내 이야기를 즐거워하는 게 틀림없다.

무턱대고 선생님 좋아요, 라는 말을 뱉는 학생들이 있다. 난 그들을 믿지 않는다. 내 이야기에 반짝이는 눈빛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하는 말에 눈빛을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학생은 국어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 듣는 게 즐겁다면 읽는 게 어려울 순 있어도 징글징글하게 싫을 순 없는 거다. 그러니 이제 국어와 이야기와 독서와 한 발짝 가까워진 거다.

오랜만이다. 이야기의 매력에 빠진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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