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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Feb 18. 2021

손으로 적는 대화

뒤에 아무도 없어, 편히 앉아


낯을 가리는 ㅈ군은 여학생으로 가득한 강의실에 조심히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지정된 건 아닌데도 처음에 앉은 자리에 꼬박꼬박 앉는 ㅈ군인데, 문제는 그 자리라는 게 무척 좁다는 거다. ㅈ군이 날씬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 자리에 내가 앉아야 했다면 나는 무척 불만이 많았을 거다. 그래서 ㅈ군이 신경 쓰였다. 좁은 자리에 얌전히 앉아 별다른 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ㅈ군을 도와주고 싶었다. 한 달 전에도 ㅈ군에게 말한 적이 있다. "자리가 너무 좁으니까 책상을 뒤로 밀어도 돼." 그런데 ㅈ군은 괜찮다면서 좁은 자리에 엉덩이를 넣고는 꼼짝도 안 했다. 그것이 남들의 시선에 부담스러워 그러는 것으로 비쳤다. 정말 편해서가 아니라.





학생이었던 때, 나는 편지 쓰길 좋아했다. 가끔은 친구에게 노트 한 장 찢어서 거기에 힘내라는 말을 적어 보내기도 했다. 그건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처음으로 강의하는 교수님의 수업이었다. 교수님은 강의가 처음이라 그런 건지 수업 시간을 엄정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실제로는 수업이 30분 전에 끝났는데 괜히 숙제를 안내하고 했던 말을 또 하면서 30분을 반드시 채우고야 말았다. 잔소리를 30분 듣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지루함을 어떻게든 참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선배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오빠, 저 졸려요.' 이런 말들을 적어 내밀면 선배는 그 밑에 답을 적었다. 그렇게 한바닥을 써 내려가며 한 학기를 버텨 나갔다. 손으로 적는 대화들 덕분이었다.



손으로 적는 대화를 참 좋아하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라졌다. 최근에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다. 말도 직설적으로 하고 행동도 머뭇대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손으로 적는 대화, 간접적인 행동들이 희미해졌다. 그러다 오늘, ㅈ군을 보면서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땐 손으로 적는 대화가 적합하다는 것이 떠올랐다. ㅈ군 입장에서는 여학생으로 가득한 강의실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종이에 적어 ㅈ군의 교재 앞에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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