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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May 12. 2021

할 말이 없을 때

안 하던 나로 돌아가려 한다


할 말이 없을 때 안 했다. 그러다 변했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고 변한다 하는데 내가 한 것은 사회생활이었을까. 대학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의 관심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그건 사회생활인가. 그냥 생활인가. 대학에 들어가 고등학생 때와 다르게 내가 한 짓은 할 말이 없어도 하는 것이었다. 강사 생활도 그렇게 했다. 자꾸 떠들었다. 떠드는 소리로 공간을 채웠다. 무심한 선생님이 되지 않기 위해 반응을 보여줬고 어색한 공기가 휩싸고 돌지 않도록 계속 질문했다. 상대의 말에 반응을 보여야 할 것 같았다. 감탄사를 쓰기 시작했고, 상대가 했던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끄럽게 굴었다. 그러니 이제는 침묵을 배우려 한다. 할 말이 없을 때 안 하려고 한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에 대해 <말을 찾지 못했을 때> 침묵하려고 한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을 말로 전하는 게 값진 것을 안다. 일부러 더 표현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오늘처럼 마음만 있고 그 마음을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일 때 무슨 말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손을 키보드에 올렸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포기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땐 표정과 몸짓으로 마음을 전하겠지만 그게 아닐 땐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다. 마음을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억지로 말을 하지는 말자.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와 말이 떠오르는 경우의 차이는 뭘까. 말이 저절로 나와야 진심인 걸까. 진심이라 부르니 무겁다. 가볍게 ‘마음’이라고 하자, ‘마음’. 거짓된 마음이 아닌데도 말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재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적재적소에 말이 튀어나와 마음을 표현해 주고 듣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나 같은 사람에겐 쉽지 않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어휘력이 부족하기도 하다. 두 가지 차이는 여전히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런 차이가 없는 지도.



이렇게 말을 잘 못하는 내가 쉽지 않은 길을 꽤 오래 걸었다. 말이 생각나지 않는 때에 어떻게라도 표현하려고 했고 반응을 보이려 애썼다. 그러다 아차, 괜히 말했다 싶은 순간도 무수히 많았다. '아차, 괜히 말했다'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며,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싶다. 떠오르는 말이 있으면 말을 내뱉고 없으면 잠잠히 있는, 자연스러움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잠잠함을 무뚝뚝함으로 보고 날 정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할까 두려워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 제목처럼 이제는 용기를 내야 할 때다. 원래의 나로 돌아올 때다.



생각해 보면 모든 건 다 어릴 때로 돌아간다. 지금 갖고 있는 태도들이 허울인 게 많아서 벗기고 벗기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지만 지금의 모습도 아니어서 우스꽝스러운 치장들은 거둘 필요가 있다. 나와 맞지 않는 허울들.



할 말이 없을 때 안 하는 나로 돌아가려 한다.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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