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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un 16. 2021

이모는 키보드를 좋아해

태경이에게 많은 걸 배우는 오늘의 전화

"이모는 뭘 가르쳐?" 명랑한 목소리의 주인공, 태경이의 물음이었다. "이모는 국어를 가르쳐." "그러엄... 글자를 가르쳐?" "응." "동서남북을 알아?" "응, 중학생, 고등학생을 가르치니까 그들이 동서남북도 알지." "국기도 알아?" "응, 알아. 그런데 이모가 잘 몰라서 그들한테 물어봐." 자신은 어린이집에서 동서남북, 국기 등을 배웠다고 말하고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이런 걸 아냐고 물어보았다. 나의 대답 끝에 태경이는 "으응." 하는 말을 달아 주는데 그 대답이 참으로 따뜻하다. 내 말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고 남의 마음에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태경이는 나와 오랜만에 통화하는 게 좋은 모양이다. 목소리에 사랑이 가득하고 애교가 가득하다. 그리고 말을 끊이지 않고 하려는 모양이 어여뻤다.



"어... 어... 이모, 그런데에(태경이의 습관이다. 할 말을 더 생각하려는 모양이다), 우리 반에는 선생님 말을 잘 안 듣는 애가 있어." "걔는 왜 선생님 말을 안 듣지?" "걔가 자꾸 로봇 소리를 내거든. 뭘 하든지 삐융삐융 그래." "하하하하, 삐융삐융 한다고?" "응. 가위질을 해도 삐융삐융, 놀이터에 가도 삐융삐융." "재미있는 친구다, 하하하하. 친구는 로봇을 좋아하는구나. 태경이는 자동차를 좋아하는데." "응, 맞아. 그런데 나 이제 로봇도 좋아해." "로봇 좋아?" "응, 조종하고 싶어. 이모는 뭐가 좋아?" "이모는..." 망설이던 끝에 대답했다. "이모는... 키보드를 좋아해, 하하하하"



키보드가 좋다고 답해 버렸다. 대답해 놓고도 웃음이 나서 껄껄껄 웃었다. 그랬더니 태경이도 따라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으니 키보드가 좋다는 이모의 말이 웃겼단다. 키보드가 좋다는 건 컴퓨터를 좋아한다는 말 아니냐고 하면서.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컴퓨터가 좋진 않다. 키보드가 좋다. 그래서 다시 말을 고쳤다. "이모는 키보드만 좋아. 키보드를 누를 때 버튼이 눌렸다가 다시 위로 솟는 그때, 그때 나는 소리를 좋아해."

그렇게 답한 건 최근에 산 키보드 때문이다. 블루투스 키보드. 노트북과는 다른 즐거움을 준다. 노트북보다 이것이 내 손의 크기에 알맞고 블루투스라서 핸드폰에나 갤탭에도 연결이 된다는 게 좋다. 더 이상 작은 자판을 누르며 핸드폰에 글자를 입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머릿속의 생각에 맞춰 손가락도 움직이고, 글자들도 움직인다. 게다가 자판을 누르는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이래서 기기에 자꾸 글자를 입력하는 프로그램만 사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조카와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 6살이라고 해서 난 그들의 눈에 맞춰 쉬운 단어를 사용하려 노력하진 않는다. 언니와 이야기하듯 단어를 쓴다. 똑똑하게도 태경이는 모르는 건 꼭 물어본다. 그리고 그걸 이해한다. 오늘도 물었다. 내가 '상황'이라는 단어를 썼더니 "상황이 뭐야?"라고 물었다. "처지야." "처지가 뭐야?" "태경이가 오늘 감기 들어서 어린이집에 못 갔잖아. 그런 게 처지고 상황이야." "..." "나는 지금 감기에 걸린 상황이야, 이렇게 쓰는 거야." "아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태경이는 물어봤고 난 대답해줬고, 태경이는 알겠다고 했으니.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그런 단어들이 자신의 입으로 술술 나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태경이와 대화를 할 때 조금은 쉬운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쉽기보다는 명확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단어들을 사용해야 한다. "이모는 뭘 좋아해?"라는 질문에 두루뭉술하게 답할 수는 없다. 명확하게 답을 하려다 보니 내 생각도 명확해진다. 나는 키보드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버튼 누르는 걸 좋아했다. 공중전화가 있을 당시인데(요즘보다 더 많이 보였다, 그때는), 그때 돈도 안 넣었으면서 버튼을 눌렀다. 그 감촉이 좋아서, 소리가 좋아서. 이제 그것이 키보드로 옮겨온 것뿐이다.



어른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어른보다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며, 어른에게 좀 더 명확한 생각을 하게 유도하는 아이. 나에겐 첫째 조카 태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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