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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olpit Jun 18. 2021

은근한 조롱

이들과 어울리려면 감수해야죠, 그럼 전 어떻게 해요?


그것은 은근한 조롱이었다. 세 명의 남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웃으면서 그리고 얌전하게 "ㅅ이가 때리면 어떡해." "ㅅ이 화나면 무서워." 등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런 말들이 사실이 아님은 다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장난을 하는 거였다. 그런데 문제는 ㅅ이다. ㅅ이가 조롱 섞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심지어 거기에 대답도 하면서 '놀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것이 문제가 된 건 화요일이었다.



그날도 "ㅅ이 무서워."라는 말들을 들었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앞에 있는 여학생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거... 놀리는 거지?" 그랬더니 여학생도 웃으면서 "네..." 하더라. 그러더니 여학생은 "너네 ㅅ이한테 왜 그래." 했다. 그걸 계기로 나도 한 마디 시작했다. "겉으로는 착한 말처럼 보여도 그것이 조롱일 때가 있는데, 속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 ㅅ이를 조롱하지 말란 말이었다. 정말 친구라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은 채 겉으로는 장난을 치며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놀림감이 되어 버린, 그 은근한 분위기는, 여학생들이 자주 한다던 '은따'와 비슷했다.



은근한 분위기는 위험하다. 은근한 분위기는 어느새 지배적인 분위기가 되어서 이 집단이 아닌 다른 집단에 가도 같은 색채를 띠게 만든다. 그것은 위험하다. 그런 생각에 ㅅ이를 조롱하지 말라고 한 마디 했더니 ㅅ이의 대답이 어처구니없었다. 자기는 이런 놀림이 재미있고, 괜찮다는 것이다. 그저 즐겁다는 것이다. ㅅ이를 위해 한 말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방해가 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어이없어하며 "ㅅ이가 괜찮구나." 했더니 세 명의 학생들은 "우리 서로 노는 거예요." 그랬다. 아무리 노는 거라고 해도 난 그들을 믿지 않았다. 약자에게 그것은 폭력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리고 목요일인 어제. 우리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하게 됐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 "ㅅ아, 선생님이 화요일에 편을 들어줬는데 왜 괜찮다고 했어?" 그러면서 ㅅ이가 현재 조롱당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ㅅ이의 입장은 이러했다. 조롱당하고 있지만 그것이 아니면 언제 친구들과 어울리겠느냐. 이런 거라도 있어야 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 나의 입장은 이러했다. 조롱을 당하지 않아도 혼자이고, 조롱을 당해도 사실은 혼자다. 조롱당할 때 발끈 화를 내고 차라리 혼자인 게 낫다. 서로의 입장이 다른 와중에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했다. 현재 조롱당하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 난 진심으로 말했다. "만약에 내가 너의 가족이었다면, 세 명의 친구와 인연을 끊으라고 말할 거야. 네가 힘들 때 도와줄 만한 친구가 아니거든. 도와줄 친구였다면 이렇게 조롱하지도 않고 놀림감으로 삼지도 않겠지."



어떤 말이 세 명의 학생에게 가닿았는지 모르겠다. 세 명의 학생은 본디 착한 아이들이다. 남학생치고 순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남을 조롱하고 놀리던 말들이 나 역시도 의아했다.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말했다. "ㅅ아 미안해. 나는 네가 화요일에 괜찮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줄 알았어. 농담이었어. 미안해." "ㅅ아 미안해." "ㅅ아 미안해."



서로 미안하단 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좋아 보이면서도 어색했다. 방금 조롱했는데 방금 사과한다고? 무엇이 그들을 '아차' 싶게 만들었던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어 이런 건 익숙하다던 ㅅ이의 말일까. 아니면 조롱이라도 받지 않으면 이들과 어울릴 수 없다던 ㅅ이의 말일까. 아무튼 그들은 순식간에 사과를 했고, 다시 하하 호호 잘 지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사과하는 모습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세 명의 아이들도 용기를 내어 사과한 것일 테니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이 왜 어색해 보였을까. 어른들 사이에선 없는 일이라 그렇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흔하지 않는 일인데 어른들 사이는 더 하다. 미안한 일을 저질렀으면서도 미안하다 말하지 않고, 사과를 해도 사과를 받을 줄 모르는 세계. 딱딱한 세계. 그 속에 갇혀 있다 보니 속마음을 들은 즉시 미안하다고 한 장면이 어색하게 보였다. 난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 걸까.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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