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대하는 자세

무언가 된다기보다 하는 게 그저 좋다면 되는 것 아닐까

by eolpit

온라인 수업을 하는 요즘, 학생과 일대일로 온라인 ‘장소’에 머무는 일이 잦다. 그건 다른 학생들이 늦게 접속한 탓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A군과 단둘이 있게 되었다. A군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 읽으려고 했는데 어제도 핸드폰 하다가 늦게 잤어요.” 그 말에 나도 어제 넷플릭스 보다가 새벽 2시에 잔 일을 고백했다.

그때 B군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수업에 다른 학생들도 들어와서 A군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수업이 끝나고 B군이 온라인 장소에서 나가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ㄱ드라마 보셨어요? 아까 들었어요.”

다 나간 방에 혼자 나가지 않고 나에게 이야기를 하길래 조금 의아했으나 별 의심하지 않고 답했다.

“맞아, 나 그거 어제부터 봤어.”

“선생님, 저 거기에 나와요. 2화에.”

그때서야 B군이 왜 혼자 남았는지 알았다.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자기가 출현했다는 말을.

몇 개월 전에 B군은 수업 끝난 뒤 홀로 남아 나에게 넌지시 무얼 좀 물어봐도 되겠느냐 물었다. 그러라고 했더니, 연기학과에 가면 국어 공부 안 해도 되냐고 물었다. 실기 비중이 크다고 들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연기학과가 어떠한지 잘 모르지만 공부를 하면 더 높은 대학을 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B군은 그 말을 듣고는 끄덕이더니, 강의실 문을 열면서 이 얘기는 애들한테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친구들과 똥 얘기, 방귀 얘기 가릴 것 없이 하는 아이라서 친구들에게 비밀로 해 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예사로 넘길 수 없었다. 그 뒤로 난 그의 꿈을 아는, 비밀스러운 선생님이 됐다.

중학생을 가르치면서 연예인 할 거라고, 기획사가 이미 있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자주 봤다. 그동안 봤던 아이들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런 사실들을 나에게 폭로했다. 그 태도에는 으스대는 것이 있었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정말 배우와 가수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획사에 들어갔다는 말을 함으로써 관심을 더 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달까. 그러다 보니 난 그들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 본 적이 없다. 흔히 하는 말처럼 ‘네가 연예인을 한다고? 해 봤자 무명이 될 뿐이야.’라고 속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B군은 다르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하면서 꿈 이야기만은 철저하게 친구에게 감췄다. 감추려고 노력하더라. 난 그런 B군의 태도를 보고 자신의 꿈이 남의 입에 오르내리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그것은 곧 꿈에 대해 남에게 무시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며, 꿈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비쳤다.

그런 B군을 보며 오랜만에 B군이 꿈꾸는 연예인에 대해 생각해봤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특출 난 사람이 있다. 반면 재능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흔히 그런 사람들이 꿈을 꾸기 시작하면 내가 했던 것처럼 다들 악담 아닌 악담을 곁들이기 시작한다. ‘네가? 야 그러다 굶어 죽어. 네가 무슨.’

누군가가 나에게 “야, 블로그에 글 좀 올린다고 작가 되냐? 네가 무슨.”이라고 말한다면 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나는 내가 특출 난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일기처럼 쓰는 이 글이 좋을 뿐이다. 쓰지 않으면 나의 존재도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책 하나를 자체 제작해서 간직하고 싶은 욕망, 그 소박한 꿈 하나인데 그것조차 꿀 수 없나.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 꿈에 자격이 있어야 하며, 그런 꿈은 꼭 1등 될 재목만이 가질 수 있어야 하나?

1등을 바라는 게 아니라 행위를 하는 게 그저 좋아서 꿈을 꾸기 시작한 거라면... 그건 자격을 운운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B군을 응원하기로 했다. B군이 연기하는 게 그저 좋은 것이기를 바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어른이 되길 바라며 말이다.

꼭 1등이 아니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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